피해자 권리는 형사소송법 개정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신진희 기자 2020.09.20 14:42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사법경찰관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해야 하지만, '그 밖의 경우'에는 1차적으로 수사를 종결할 수 있다. 사법경찰관이 구성요건 해당성, 위법성, 책임, 처벌조건, 소추조건까지 전체적으로 판단한 후 불송치 결정을 하면 사건이 종결되는 것이다. 결국 검사의 기소권 일부를 사법경찰관이 행사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다만 불송치 결정 사건의 경우 사법경찰관이 고소인·고발인·피해자 또는 법정 대리인에게 그 취지와 이유를 통지해야 하고, 위 통지를 받은 사람은 해당 사법경찰관 소속관서의 장에게 이의를 신청할 수 있다. 이의신청이 있으면 사법경찰관은 지체 없이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해야 하므로, 개정 형사소송법 하에서도 사법경찰관의 불송치 결정으로 인한 불복수단이 마련돼 있다.

그렇다면 위 개정 형사소송법은 범죄피해를 입은 국민의 형사소송 절차상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방향으로 개정된 것일까? 이러한 수사구조의 변화가 범죄피해자의 법적 지위와 절차적 권리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3년 형법에서 강간죄 등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됐을 때, 일선 경찰관 중 일부는 친고죄가 폐지됐다는 이유로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고소장을 반려했다. 친고죄가 폐지돼 고소장을 제출하지 않아도 경찰이 사건을 수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면 맞는 말이지만, 고소 사건이 아닌 인지 사건으로 처리된 결과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불복절차인 항고절차, 재정신청절차상 피해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발생했다.

범죄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모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는 현재 수사구조 하에서는 검사의 기소 여부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받을 기회가 자동으로 보장돼 있는데, 개정 형사소송법상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권은 새로운 절차적 권리 보장 장치라기보단 실질적 권리 침해 장치로 작동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아동·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사건, 아동·노인에 대한 학대 사건,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친족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직접 고소하는 경우는 드물다. 학교 교사, 복지기관 종사자 등 성폭력·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들에 의해 신고되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와 같은 사건에서 아동·장애인 등 피해자에 대해 이의신청 통지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의신청권을 실제로 행사할 수 없다면, 결국 경찰의 수사종결권으로 인해 오히려 피해자의 권리는 침해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따라서 고소 사건으로 처리되지 않은 피해자의 항고 및 재정신청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경찰은 고소 사건과 인지 사건의 구별을 형식적인 고소장 접수 여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또 신고 접수 단계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절차상 정보제공을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개정 형사소송법에서 경찰의 수사종결권에 대한 통제장치로서의 범죄피해자의 이의신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특히 아동·장애인 등 범죄피해자의 국선변호사에게는 통지를 의무화하는 등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신진희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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