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판결, 정의로운 비극으로 끝나선 안 된다

[서초동살롱]"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소송 외 손해배상 방법 요원" 판결 집행, 정치권이 책임져야

김종훈 기자 2021.01.17 05:00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 사진=김휘선 기자


판결은 갈등 해결의 마지막 수단이다. 각자에게 마땅한 몫을 쥐어주는 정의 구현도 중요하지만, 당사자들이 법적갈등의 굴레를 벗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판결은 실현 가능해야 하고 집행 가능해야 한다.

지난 9일 법원이 일본을 상대로 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박수가 이어졌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진일보시켰다"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세계인권사에 이정표를 남긴 역사적 판결"이라고 밝혔다. 반인륜적 전쟁범죄는 반드시 마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요지다. 이것이 정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이 정의를 집행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본은 이번 소송 내내 '무시'로 일관해 왔다. 소송 절차에 응하라는 우리 법원의 요구에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판결 후 일본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판결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항소조차 하지 않겠다고 했다. 판결이 확정된다 해도 이번 손해배상 판결을 집행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우리 정부가 판결서를 들고 국내 일본 자산을 강제압류한다면 국제분쟁으로 비화될 것이 뻔하다. 일본에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국제사법재판소로 간다면 판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우리 법원에서 1심 판결을 내는 데에만 7년이 걸렸다.

국제사법재판소로 안 간다고 해도 판결집행에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한·일 갈등과 국제분쟁의 격랑에 또 다시 휘말릴 것이다. 그 격랑을 버티기에는 이들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정의롭지만 비극적이다.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정부와 정치권밖에 없다. 법원 판결에 환영 논평, 박수만 보낼 것이 아니라 판결집행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협상력과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지 못하는 개인에 불과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로서는 소송 외에 손해를 배상받을 방법이 요원하다"는 법원의 안타까움도 잊어선 안 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소송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치와 외교가 이 문제에 손을 놓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광복 후 75년 넘게 지나도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한을 풀어주지 못한 것에 책임감을 갖고 이번 판결을 집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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