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릉 전투와 중대재해처벌법

[남 변호사의 삼국지로(law)]45

남민준 변호사 2021.01.16 08:29




이릉 전투와 중대재해처벌법




유비가 관우를 형주와 함께 잃고 대노하여 시작한 싸움이 바로 이릉의 전투입니다.

전투 초반 오의 육손은 대병을 일으킨 촉의 기세를 생각해 함부로 맞서 싸우지 않으면서 전투를 장기전으로 끌고 갔고,

촉군이 장기전에 지치고 유비가 강을 따라 700리의 장사진을 쳤을 때 육손은 비로소 촉과 싸움을 시작하여 유비가 대패하게 되는데요.

마량을 통해 당시의 포진을 본 제갈량이 크게 놀라 마량에게 패전했을 때 유비를 백제성에 대피시키라고 했을 만큼 유비의 포진은 형편 없었습니다(마량, 왕보 등도 결국 이릉 전투에서 죽게 됩니다).

승패가 병가의 상사라고 하지만 제갈량이 대경하여 곧바로 패전 이후의 대비책을 얘기하였을 정도라면 유비가 단순히 전투를 진 것이 아니라 전투를 질 수 밖에 없는 터무니 없는 포진을 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오늘은 요즘 많이 회자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해 한 번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부족한 고민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입법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에 여러 목소리를 담으려 하였고 그렇게 여러 목소리를 따르려다 보니 목적 달성을 위한 적절한 방법에 관한 고려도 부족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선 떠오르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아쉬운 점과 보완할 점에 관해 필자의 관점에서 몇 가지를 적어 볼까 합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겠지요.

①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은 재해의 방지입니다.

근로자의 안전확보를 게을리 한 과실로 인해 발생한 중대재해의 예방을 위해서는 원청이 사기업인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앞서 든 사례의 경우처럼 유비의 명백한 실책, 즉 국가의 실책으로 인해 전투에서 수 많은 촉군이 희생되었습니다.

물론 서로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전투 중의 일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한 희생이 통상적인 범주 내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것과 누군가의 명백한 실수로 인해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정도를 넘는 피해가 발생한 것을 같다고 할 수는 없을 테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의의무위반으로는 절대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필연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만을 면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② 사기업에 한정하더라도 책임의 주체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회사의 구조상 사고 발생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은 보통 (원청이든 협력업체든) 바로 현장에서 안전관리에 관한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고,

회사 조직 체계를 따라 그 위로 올라 갈수록 결과 발생에 대한 기여도는 희석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안전관리에 관한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도, 심지어 임원도 따지고 보면 경제적 이익의 주체라기 보다는 월급을 받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근로자 안전 확보에 관한 결정권을 갖기 보다는 급여를 받는 근로자로서 주어진 상황에 따라 맡은 일을 하시던 분들인데 ‘중대재해’라는 결과만으로 또는 중대재해방지를 위한 위하라는 목적만으로 그 책임을 가중하는 것이 결과예방에 얼마나 큰 효용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사실 이런 부분 때문에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면서도 약한 형이 선고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인데요, 이런 부분은 현장에서 일을 하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나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③ (대단히 조심스럽지만) 부지불식간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벌만능주의에 사로 잡힌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일단 중대재해처벌법에 의해 처벌 받게 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과실범’입니다.

결과를 의도하고 행위하는 고의범과 달리 과실범이기 때문에 행위로 인한 결과와 그 결과에 필히 따르게 되는 책임에 관한 인식의 정도가 미약할 수 밖에 없어,

중형을 예정한다 하더라도 중형이 행위자에게 주는 위하적 효력이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사형제의 폐지와 관련한 논의에서도 이와 비슷한 얘기가 나오는데요,

‘실제로 중대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후 사형이 선고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결과가 발생하였는데 행위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이 보복적 감정을 위로하는 정도 외에 형벌제도의 목적달성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라는 의견도 있고,

‘명확한 비율로 근거를 들 수 없으나 결과에 따라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다는 점은 경험칙상 위하작용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느 쪽 의견이 맞고 틀리다가 아니라 경청할 만한 양 쪽의 의견이 있다면 “‘중형’으로써 ‘중대재해를 방지’하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라는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중대재해라는 결과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양형기준을 재정비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필자 양반, 그러면 대기업이나 원청이 뭐가 무서워서 근로자 안전 확보를 위한 비용을 더 쓰겠소? 처벌이라도 해야 하지 않소?’라고 물으실 수 있겠네요.

이 부분에 관해서는 항을 바꾸어 적겠습니다.

④ 근로자 안전 확보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 원인은 ‘사고가 나지 않을 거야’라는 절대적 확신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안전 확보 의무 해태로 인한 불이익을 반드시 형사처벌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관련된 행위 태양과 사고의 발생 경위를 고려하여 안전 확보 의무 해태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따라 경제적 손실이 더 클 수 있도록 하는 방안 역시 재해발생을 억지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관해 책임 주체와 책임의 정도에 있어 제한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지면 사정상 매우 간략히 적습니다. ‘제한된 징벌적 손해배상’을 언급한 이유는 적어도 책임이 주체가 감당하여 회사가 존속할 수 있는 선에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⑤ 제한된 징벌적 손해배상 외에 배상액의 연대책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산재 소송을 하다 보면 현실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인데 협력업체의 직원이 다쳤을 때 근로자는 자신이 소속된 협력 업체 외에 원청 역시 피고로 특정하여 소송을 제기합니다.

i) 무엇보다 협력업체의 변제자력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이고 ii) 소송으로써 원청을 압박하여 그 원청이 다시 근로자가 소속된 협력업체가 적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도록 어느 정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런 경우 원청은 도급의 법리를 들어 ‘도급에 중대한 과실이 없었고 구체적 지휘∙감독을 한 바 없으니 원청은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원청이 위와 같은 주장으로 배상책임을 지지 않고 협력업체만이 배상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근로자 입장에서는 자력이 없는 협력업체를 상대로 승소 판결문을 받아도 회사이 무자력으로 인해 승소 판결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배상을 받지 못하거나 부족한 배상을 받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의 법제에는 원청이 수급인의 채무에 관해 연대책임을 지도록 한 규정이 하도급법 등에 적지 않게 있는데,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해 이 경우에도 원청이 곧바로 면책되도록 할 것이 아니라 원청도 책임 있는 협력업체와 함께 배상액에 관한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원청과 협력업체의 내부적인 계산은 이후 그들 사이에 해결할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⑥ 형사처벌이 유가족이나 장해를 얻게 된 근로자의 가족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유족이나 근로자 가족의 억울하고 막막한 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대재해로 기업이나 기업의 대표를 처벌하는 것이 사고로 인해 당장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근로자의 가족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형사처벌과 관련해서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과 양형기준의 정비로써 해결이 가능하니,

근로자의 가족들이 실질적이고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한적인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과 배상에 관한 연대책임을 적은 것이고요.

사실 오늘 적은 문제는 A4 용지 몇 장으로 적을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만, 최근 뉴스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계속하여 회자되었고 그 법이 국회를 통과하였음에도 여전히 그 법은 환영 받지 못하고 있어,

지금의 중대재해처벌법에 어떤 아쉬운 점이 있나 살펴 보는 차원에서 필자가 대리인으로서 또는 변호인으로서 수행해온 산재소송이나 산재로 인한 형사사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간략하게 적어 보았습니다.

다 적고 다시 읽어 보니, 하고 싶은 말도 많고 각각의 내용에 관해 더 구체적으로 적고 싶은 내용도 많습니다만,

지면을 통해 글로 전달하는 것에 한계가 있어 꽤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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