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를 살려 주게 되면 목을 내놓겠다”는 관우의 얘기는 법적으로 유효할까요?

[남 변호사의 삼국지로(law)]48

남민준 변호사 2021.02.06 08:07





“내가 조조를 살려 주게 되면 목을 내놓겠다”는 관우의 얘기는 법적으로 유효할까요?




“유기가 죽으면 형주를 돌려 줄 예정입니다”

“촉을 얻으면 형주를 돌려 줄 예정입니다”

“화용도에서 조조를 살려 주게 되면 목을 내놓겠습니다”

모두 “~~하면 ~~하겠습니다”라는 표현인데 “~~하면”이라는 표현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 역시 실제 생활에서 위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약속하는 경우가 적지 않죠.

오늘은 위와 같은 ‘표현’의 법적 의미나 그와 관련한 문제를 살펴 볼까 합니다.

① 수의조건, 말 그대로 자신의 뜻대로 조건을 붙인 것입니다.

(그러지는 않았습니다만) 조조가 여포를 생포하기 전에 여포에게 “너를 잡아도 내가 기분 좋으면 너를 살려 줄게”에서 ‘내가 기분 좋으면’이라는 부분입니다.

이런 조건이 붙은 의사표시는 법적으로는 효력이 없습니다(무효).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자신의 기분이나 의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면 굳이 거기에 법적 효력을 부여할 필요는 없겠죠, 어차피 자신의 기분이나 의지대로 할 테니까요.

이에 반해 “내가(조조) 너를(여포)를 생포해도 유비가 살려 주라고 하면 살려 줄게”는 법적으로 유효합니다.

“유비가 살려 주라고 하면”이라는 부분인데요, 조조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유비의 뜻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이러한 조건에 관해서는 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② 이번에는 불능조건과 기성조건에 관해 살펴 볼까요.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이미 패한 후,

유비에게 “내가 적벽대전에서 이기면 허창을 촉에게 줄게”라는 조건을 붙여 위와 같은 법률행위를 하였다면 이런 행위는 무효입니다.

이미 적벽대전에서 패하였으니 적벽대전에서의 승전을 조건으로 (불능조건) 한 법률행위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내가 적벽대전에서 지면 허창을 촉에게 줄게”라는 법률행위를 하였다면 이런 행위는 유효합니다.

이런 조건을 기성조건이라고 하는데요, 이미 성취된 내용을 조건으로 달았으니 바꾸어 말하면 ‘조건 없이 허창을 촉에게 주겠다’는 취지의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③ 앞서 적은 내용처럼 어떤 법률행위에 조건이 붙어 있음에도 상대방이 그 조건의 성취를 방해하여 조건이 성취되지 않았다면 조건이 붙은 법률행위의 효력은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볼까요?

유비가 조조에게 “네가 적벽대전에서 이기면 나는 네게 촉을 줄게”라고 약속하였습니다.

익히 아시듯 유비는 손권과 연합하여 연환계로써 조조를 적벽에서 패퇴시켰죠.

유비는 조조가 이기면 촉을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서는 오히려 조조가 이기지 못하도록 하여 조건의 성취를 방해한 것인데요.

이런 경우 우리법은 조조의 패전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조건의 성취를 방해하였으므로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④ ‘~면’이라는 같은 표현 방식을 사용하지만 조건과 기한은 어떻게 다를까요?

“유기가 죽으면 형주를 줄게”

“촉을 얻으면 형주를 줄게”

유비가 손권에게 한 얘기입니다.

“유기가 죽으면”이라는 부분은 (불확정)기한이고 “촉을 얻으면”이라는 부분은 조건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기한이라는 것은 ‘그 일이 반드시 일어 난다’는 것인데 반해 조건은 ‘그 일이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이런 개념적 정의에도 불구하고 불확정기한과 조건의 구별에서는 애매한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사람은 반드시 죽기 때문에 ‘유기가 죽으면’이라는 부분은 조건이 아닌 기한입니다.

다만 유기는 반드시 죽지만 언제 죽을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유기가 죽으면”이라는 부분을 ‘불확정’기한이라고 합니다(이에 반해 날짜를 콕 찍어 ‘서기 200년 1월 1일이 되면 형주를 줄게’라고 하였다면 확정기한이겠죠).

그런데 “촉을 얻으면”이라는 부분과 관련해서 유비는 촉을 얻을 수도 있고 얻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기한과 비교해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라 할 수는 없겠죠.

사실 조건이나 기한과 관련해서는 앞서 언급한 내용 외에도 해제조건과 정지조건의 문제, 조건과 불확정 기한의 구별 문제 등이 있습니다만,

상식 수준에서는 앞서 언급한 내용 정도로 충분한데다 법률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굳이 더 깊이 들여다 볼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면”이라는 표현을 넣어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말로 한 약속도 (구두계약) 법적으로는 유효한 만큼 ‘~~면’이라는 표현의 법적 의미를 개략적으로라도 알아 두는 것이 좋겠죠.

다시 처음으로 와서,

“내가 조조를 살려 주게 되면 목을 내놓겠습니다”는 관우의 행위는 법적으로 유효일까요? 무효일까요?

(사실 위 표현에는 조건과 기한의 문제 외에 민법 제103조 위반의 문제도 있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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