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L레터] 김명수 대법원장은 '저스티스'인가

좌고우면 대법원장, A4 1장짜리 입장문 법원 내부망에 '덜렁' 게시

김종훈 기자 2021.02.21 07:25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뉴스1


미국에서는 대법관을 저스티스(Justice), 대법원장을 치프 저스티스(Chief Justice)라고 부른다. 모르긴 몰라도, 추상적인 법문으로부터 통일적, 체계적 해석을 끌어내는 지성과 대법관으로서의 도덕성을 함께 기대하는 데서 나온 언어사용이라 짐작한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CJ'로 통한다. 치프 저스티스의 약자다. 법원행정처는 앞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CJ의 뜻"이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법원장의 처사는 사표 반려 자체보다 반려한 이유가 문제다.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하고." "오늘 그냥 (사표를) 수리해 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하잖아."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치 않아." 김 대법원장 입에서 나온 말들이다. 처음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둘러대다 녹취록이 공개되자 그제서야 실토했다.

사퇴 요구가 빗발쳤다. 김 대법원장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야당 의원들이 찾아가 거취를 묻자 "다시 잘해보겠다"며 버티기에 나섰다. 그 사이 대법원 청사에 근조화환이 백개 넘게 놓였다.

결국 19일 입장을 냈다. 대국민 사과를 해도 모자란 상황에 법원 내부망에, A4 용지 1장짜리 입장문을 올렸다. 임 부장판사 사표 건에 대해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다", "정치권과의 교감이나 부적절한 정치적 고려를 하여 사법의 독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임 부장판사에게 했던 말들은 무슨 의미였나.

그간 김 대법원장은 줄곧 좌고우면하는 모습만 보여왔다. 전광훈 목사의 광화문 집회를 허가해줬다는 이유로 담당 부장판사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아도, 정경심 교수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가 정치권으로부터 "판사탄핵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공격을 당해도 나몰라라 했다. 임 부장판사에 대한 법관탄핵소추가 그 결과다.

인사 때마다 '인권법' '우리법' 같은 친정부 코드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원칙도 깨졌다. 그것도 하필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담당 판사,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담당 판사에 대한 인사에서 원칙이 깨졌다. 최근에는 자신이 앞세운 인사개혁안을 스스로 뒤집고 거짓 해명을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광주지법 일선 판사들의 추천을 받은 법원장 후보를 내치고 자기 입맛에 맞는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범인이라면 바람 앞에 갈대처럼 엎드리는 식으로 고개 숙일 수 있겠지만 대법원장은 달라야 한다. 꺾여 부러질지언정 외풍에 굴복해선 안 된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을 향한 외풍에 갈대처럼 엎드렸다. 거센 외풍에 두터운 성곽이나 바위처럼 사법부 앞을 지켰어야 했지만 고개 숙였고 풍파는 일선 판사들에게 몰아쳤다.

19일 입장문 말미에서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에게 부여된 헌법적 책무의 엄중함을 되새기고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더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봐달라는 얘기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을 둘러싼 혼란, 법원 내부의 불신은 목불인견의 지경이 됐다.

이 불신이 일선 판사들의 판결에 옮겨붙을까 걱정스럽다. 불은 옮겨붙기 전에 끄는 것이 상책이다. 자신이 저스티스인지 김 대법원장이 자문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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