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적폐청산 광풍" 박병대 "검찰 주장은 침소봉대"(종합)

양승태 전 대법원장·박병대 전 대법관, 법정서 직접 발언

박수현 2021.04.07 16:43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월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사법농단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적폐청산의 광풍"이라며 검찰 수사를 직접 비판했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도 "검찰의 주장이 침소봉대와 견강부회로 되어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판사 이종민 임정택 민소영)는 7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의 122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은 지난 2월 5일 공판이 속행되고 약 2개월 만에 재개되는 것이었다. 그 사이 형사합의35부는 부장판사 3인으로 구성된 대등재판부로 바뀌었고, 재판부 구성도 모두 변경돼 이날 공판에선 공판절차 갱신이 이뤄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법정에서 직접 입장을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광풍이 사법부까지 불어왔다"며 "그 과정에서 자칫 형성된 예단이 객관적 관찰을 방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법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양 전 대법원장은 '검언유착 의혹'에 연루된 한동훈 검사장이 지난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신청하면서 "수사 상황이 실시간으로 유출되고 수사의 결론이 미리 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 부분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이야말로 당시 수사 과정에서 어떤 언론이 수사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방송하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쉬지 않고 수사 상황이 보도됐다"며 "그 과정에서 모든 정보가 왜곡되고 결론이 마구 재단돼 일반 사회에서는 저희들이 마치 직무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는 생각에 젖어들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제 광풍이 다 할퀴고 지나간 자국을 보면서 객관적으로 왜 이렇게 된 건가 살펴야 하는 상황에서도 과거에 형성된 예단이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을 매우 걱정하고 있다"며 "재판부가 이 사건의 본질이 뭔지, 실질적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해 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법관도 이날 오후 재판에서 발언 기회를 얻고 "이 사건이 논란이 되고 수사 진행 과정에서 제시된 프레임은 두 가지"라고 지적했다.

박 전 대법관은 "처음에는 사법부내 비판적 법관들을 탄압하기 위한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원 내부 조사에서부터 그런 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확인되자 이번엔 정치적 사건의 재판에 개입했거나 거래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사법농단'이란 이름으로 덧씌워졌다"고 했다.

이어 "이 사건 공소장 역시 두 개의 시각이 기본이 되어 짜여있다"며 "예컨대 통상적인 인사업무의 일환으로 작성된 정책결정보고서가 블랙리스트라도 되는 양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언급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판개입 문제는 사건 결론에 어떤 조작이 있었던 것처럼 수사과정에서 일반인들의 인식을 한껏 오도했지만 정작 재판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확인되자 결국 공소사실 대부분은 행정처 심의관들로 하여금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게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걸로 구성됐다"고 했다.

박 전 대법관은 "이를 두고 어느 언론인은 수사 초기 요란하고 창대했던 재판 거래의 프레임이 먼지가 돼서 사라졌다고 일갈했다"며 "검찰의 주장이 얼마나 기교적인 형식논리로 구성돼 있고 침소봉대와 견강부회로 되어 있는지는 추후 재판 중에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일제 강제징용 재판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재판에 개입하고 사법행정을 비판한 법관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가한 혐의 등으로 2019년 2월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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