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공정의 길'위에 바로 서라[서초동 36.5]

배성준 2021.04.29 04:50
20세기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말했다. 인간은 나무나 돌과 같이 단순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를 문제 삼는 유일한 존재라고. 때문에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존재방식에 회의를 품으면서 진정한 존재방식을 찾고 구해야 한다고 했다.

시작부터 거창하게 20세기 철학자까지 불러온 이유는 '존재는 하되 존재 이유를 아직은 알 수 없는 조직'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다.

출범 100일을 맞는 공수처는 출발부터 공정성에 금이 가고 말았다. '김학의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조사하면서 공수처장의 관용차를 동원하고 조사기록도 남기지 않는 등 황제조사 논란을 낳았다.

검찰 조사 때 고위공무원이 소환되면 수사책임자가 차 한잔 하는 예의를 보이기는 했지만 이런 사례는 찾아 볼 수 없다. 그 결과 친여 인사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자초했다. 공수처장 비서관 채용을 둘러싸고도 특혜시비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공수처는 수사의 공정성과 결과의 투명성 담보에 존재의 이유가 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도 고쳐쓰지 말라는 속담처럼 의심 받을 행위나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출범 초기임을 감안하더라도 김진욱 공수처장이 보여준 공정성에 대한 기대 이하의 의식은 그래서 더 문제로 느껴진다.

공수처의 수사력에 대해서도 법조계의 평가는 냉정하다. 채용한 검사는 예정했던 인원의 절반을 조금 넘긴 13명으로 정원에 한참 미달한데다 수사 경험이 있는 검찰 출신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비단 '수'의 문제가 아니다. '질'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교육을 받으면 된다지만 시간이 지난다고 문제가 쉽게 개선될 지는 의문이다.

노련한 수사관들은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고 표현한다. 수사는 생물체처럼 변화해 어디로 향할지, 범위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고 진행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수사는 정교한 외과 수술에 비유되기도 한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수사, 독립적이면서도 인권침해를 최소화하는 세밀한 수사를 이뤄내야 한다는 뜻이다.

수사가 어려운 이유는 범죄도 진화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부와 권력이 탐욕스럽게 엉켜있는 고위공직자의 범죄는 더더욱 그렇다. 첨단 IT기법을 이용하기도 하고 회계를 조작하고 돈의 흐름을 복잡하게 만들며 법망을 피한다. 촘촘한 수사망을 펴고 인권침해를 하지 않으면서 진화하는 범죄를 쫓는 것은 배테랑급 수사인력조차 어려움에 봉착하는 부분이다.

이를 의식한 듯 김진욱 처장은 수사력에 문제가 없다며 "최후의 만찬을 보면 13명의 사람이 있다. 13명의 사람이 세상을 바꾸지 않았나", "13명이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김 처장은 "무학(無學)에 가까운 갈릴리 어부보다 (공수처 검사들이) 훨씬 양호할 수도 있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 김진욱 처장이 놓친 것이 있다. 그 13명 안에는 십자가를 진 예수님이 있었고 갈릴리 어부들이 기독교를 널리 전파하고 세상을 바꿀수 있었던 것은 사명감과 책임감, 헌신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란 점이다. 제자들은 대부분 순교할 정도로 신념과 소명의식이 투철했다. 그로 말미암아 짧은 시간에 기독교는 세상에서 가장 널리 믿는 종교가 됐다.

이제 김진욱 처장에게 묻고 싶다. 김 처장과 공수처는 그럴 준비가 돼 있는가.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수호하고 인권 보호를 위한 의지와 실천력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는지 말이다.

시작부터 불거진 공정성 논란은 검찰의 원죄를 공수처로 가져와 더 심화시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립성을 잃은채 정권에 예속화된 기관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편협한 기우일까.

새로운 기관이나 시스템을 만들 때 나오는 말들이 있다.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나 정권이 문제라는 뼈아픈 지적이다. 공수처는 이러한 전철을 밟지않고 바로서야 한다. 우리 사회의 등대가 되어 무너진 정의와 공정을 지켜내야 한다. 이것이 공수처가 존재하는 이유가 될 것이며 이를 스스로 입증해 내야 할 존재도 바로 공수처임을 반드시 기억해주길 바란다.

배성준 부장(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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