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양모 무기징역·양부 구속…시민들 "솜방망이" 고성

'무기징역' 양모, 사실상 법정 최고형...양육 자녀 있음에도 양부모 모두 이례적 구속(종합)

정한결, 오진영 2021.05.14 15:52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1심 선고공판이 열린 14일 오후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모인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16개월 영아 정인이를 학대 끝에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양부모가 1심에서 모두 중형을 선고받았다. 양육할 자녀가 있음에도 부부가 모두 구속된 이례적인 선고로, 재판부가 그만큼 이 사건의 죄질이 나쁘다고 평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시민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법원 앞에서 분노를 표출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이상주)는 14일 살인 등의 혐의를 받는 장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아동복지법위반(아동학대 등) 혐의를 받는 양부 안모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법정 최고형은 사형이지만 수십년째 사형 집행이 되지 않은 한국에서 사실상 최고형이 내려진 셈이다.

재판부는 아울러 양부모에 각각 20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관련 기관 취업제한 10년을 명령했다. 다만 검찰이 요구한 전자발찌 부착에 대해서는 "장래 다시 살인을 저지를 개연성이 없다"며 기각했다.

재판부는 장씨에 대해 "보호와 양육의 대상이었던 양자를 잔혹한 가해·학대 행위 대상으로 삼다가 그 생명마저 앗아갔다"면서 "반인륜적, 반사회적 성격이 매우 크고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충격과 상실감을 줬다"고 일갈했다.

이어 "이 범행은 헌법상 누구에게나 주어진 존엄과 가치를 무참히 짓밟은 비인간적인 범행"이라면서 "장씨를 일반 사회에서 무기한 격리해 상응하는 책임을 묻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할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안씨에 대해서는 "장씨의 학대를 제지하거나 적절한 구호 조치를 했더라면 사망이라는 비극을 막을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망 전날에도 피해자를 살릴 마지막 기회마저 저버렸기에 엄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양육할 큰 딸이 있음에도 부부가 모두 구속된 셈이다. 안씨가 법정구속 전 "큰딸을 생각해 2심을 받기 전까지는 사유를 참작해달라"고 호소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가 그만큼 이 사건의 죄질이 나쁘다고 평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재판부는 "엄한 처벌이 불가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철저히 부정한 범행," "납득할 수 없는 변명,"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만행" 등을 발언하며 장씨 부부를 꾸짖었다.


모든 공소사실 유죄…"살인의 미필적 고의 인정"


재판부는 살인을 포함한 양부모의 모든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장씨는 그동안 상습아동학대 혐의 중 일부와 살인 혐의를 부인해왔는데, 재판부는 '정인이의 신체 손상이 학대 이외 다른 원인으로 발생하기 힘들다'며 반박했다.

특히 재판 내내 치열한 공방의 대상이던 장씨의 살인죄에 대해서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봤다. 그동안 장씨는 사망 당일 정인이의 복부를 발로 가격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대신 정인이를 어깨 높이에서 떨어뜨렸고,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과정에서 정인이의 췌장과 장간막이 절단됐기에 고의로 살인에 나서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이를 전부 반박하며 장씨가 정인이 사망 당일 발로 정인이 복부를 2회 이상 가격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기들은 대부분 복부에 집중돼 있다"면서 "복부에 강한 충격을 반복적으로 가하면 장파열 등이 발생할 수 있고, 즉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장기에 손상이 발생하여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은 일반인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 앞에는 분노한 시위대


14일 서울 양천구의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정인이 선고 결과를 전해들은 한 시민이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다.
'정인이 사건'은 세 차례의 아동학대 신고에도 이를 방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양모의 잔혹한 학대 사실이 드러나자 재판이 열리는 날마다 남부지법 앞에는 근조화환이 들어섰으며, 매번 모인 시위대도 양부모의 엄벌을 촉구했다. 신고 대응에 실패한 경찰관들은 징계를 받았고, 국회에서는 아동학대 대응과 형량을 강화하는 이른바 '정인이법'이 지난 2월 통과됐다.

이날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앞에도 분노한 시민들이 오전 7시부터 모였다. 경찰이 수차례 해산을 요구했지만 이에 불응하며 양부모의 엄벌을 탄원했다. 재판을 앞두고 장씨가 탄 것으로 추정되는 푸른색 호송버스가 들어서자 수백명의 시민들이 일제히 정문 앞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사형' '살인죄로 처벌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양모의 실명을 외쳤다. 호송버스는 순식간에 시민들의 앞을 지나쳤으나 이들은 계속해서 큰 소리로 '양모를 사형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의 선고 결과가 나오자 불만이 빗발쳤다. 곳곳에서 "솜방망이 처벌," "아동학대가 양산된다" 등의 고성이 오갔다. 검은색 상복을 입은 이수진씨(36)는 결과를 듣고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하기도 했다. 이씨는 "결과가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면서 "무기징역도 가석방 있을지도 모르고 양부 5년 선고도 군대 2번 갔다오는 시간 아닌가"라고 밝혔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도 "외국처럼 감형 없는 무기징역이 내려져야 한다"면서 "결국 이렇게 됐지만 대법까지 이 형이 유지될 수 있도록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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