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비가 내립니다"…누구를 위한 반성문인가[서초동살롱]

박수현 2021.06.20 07:47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사진=뉴스1
"타인의 눈물은 언젠가 자신의 마음에 비가 되어 내립니다"

텔레그램 대화방 '박사방'에서 아동·청소년들을 성착취한 조주빈이 지난 1일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았다. 조씨 아버지는 선고 직후 기자들에게 종이 한 장짜리 자필 사과문을 공개했다.

조씨가 직접 작성했다는 반성문에는 까만 글씨로 "모두에게 사죄드리고자 펜을 들었다" "죄스럽고 참담한 심정" "제 죄의 무게를 인정한다" "매일 재판받는 심정으로 살아가겠다"는 등의 말들이 담겼다. 반성문 오른쪽 아래엔 붉은 지장도 찍혔다.

조씨가 스스로 반성문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지만 반성문을 제출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조씨는 1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10차례, 2심 재판 동안 32차례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조씨만의 일이 아니다. 형사 재판에서 피고인들은 재판부를 향해 수차례 반성문을 쓴다. 직접 쓰지 못한다면 몇 만원을 주고 대필을 맡긴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수많은 사건의 피고인들이 그랬다.

서울 노원구의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은 지난 5월부터 재판을 받는 한 달여간 총 5차례 반성문을 제출했다.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를 학대해 숨지게 한 '정인이 사건'의 양모 A씨도 지난 3월부터 약 두 달간 10차례 반성문을 냈다.

반성문을 제출하는 이유는 감형을 받기 위해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양형기준에 따르면 범죄 감경요소에는 '처벌불원' '진지한 반성' '형사처벌 전력 없음' 등이 있다. 이중 반성문은 '진지한 반성'으로 비춰져 감경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때늦은 반성문을 10번, 30번씩 받아주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는 지적이 있다. 피고인이 진정 반성한다면 반성문보다 범죄피해 복원, 법정에서의 태도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수 차례 반성문을 작성한 조씨는 1심에서 범죄단체조직 등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45년을 선고받았다. 검사와 피고인 측은 모두 판결에 불복했고, 2심에서는 징역 42년으로 감형받았다.

2심 재판부는 조씨가 전과가 없는 초범인 점,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교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힘든 점, 조씨가 부친의 노력으로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반성문을 통해 "제 죄의 무게를 인정한다"며 "매일 재판받는 심정으로 살아가겠다"던 조씨 측은 2심 판결을 받고 3일 뒤 상고장을 제출했다. 미사여구를 늘어놓은 반성문을 찍어내듯 써내는 것보다 피해자들을 위한 손해배상으로 진정성을 보이는 게 본인을 위해서도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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