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권력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는가 [서초동 36.5]

배성준 2021.07.08 05:30
춘추시대 천재 병법가로 불리는 손무가 쓴 '손자병법'은 지금도 최고의 전술서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전쟁에서 이기는 전략을 소개한다. 부대 편제에서 군사 운용의 기본 원칙은 물론 다양한 기만전술과 속임수가 등장한다.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속임수와 거짓은 얼마든지 미덕이 될 수 있다. 전쟁에서 최고의 정의는 오로지 '승리'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국민들의 지지는 뜨거웠다. 당시 검찰 개혁의 새 역사를 써나가자 부르짖었다. 그 뜨거움에 찬물을 끼얹은 이들은 어쩌면 정부와 검찰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세간에서 검찰 개혁은 물 건너간 이야기의 동의어로 여겨진다.

김오수 호(號)가 출발한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취임하면 그간의 편향성 시비를 불식시키고 합리적 행보를 할 거란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검찰 고위간부 인사와 사상 최대 규모의 중간간부 인사는 또다시 '중립성' 논란을 불러왔다.

이번 인사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이나 신념을 같이하는 친정부 간부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법무부는 '전진인사'라며 사상 최대 규모 인사의 배경을 밝혔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친정부 인사의 약진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김학의 사건'이나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의 수사팀장이 이번 인사에서 모두 교체됐다. 윤석열 전 총장 라인으로 분류되는 검사들도 어김없이 좌천됐다.

피고인이 되고도 고검장으로 승진하거나 부부장으로 승진한 검사가 있는가 하면 피해자가 되고도 좌천 인사에 우는 검사장도 여전하다. 친정부 검사는 아군이며 이에 반(反)하면 모두 적으로 돌린다는 불만이 검찰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것을 국민이 납득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다.

월성원전 의혹 수사팀은 일찍이 백운규 전 산 산업부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에 대해 대검찰청에 기소의견을 올렸지만 차일피일 미뤄졌다. 두 사람은 기존 수사팀장의 인사직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지만 핵심인 '배임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다. 배임 혐의가 인정될 경우 백 전 장관이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았는지 수사해야하고 흐름은 청와대로 향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수사팀 사이에 이견이 있는 것도 아닌데 검찰수사심의위 결정이 내려진 것에 대해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병법서의 '승리의 법칙'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미덕일까? 정당의 목적인 정권획득이나 선거전이 종종 전쟁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이는 치열한 승부세계를 표현한 것이지 정말 전쟁과 같은 가치관이나 이념을 갖자는 것은 아니다. 이기는 게 전부라면 우리는 왜 정의를 이야기하고 공정의 가치를 논한단 말인가!

국회나 정부, 각 기관에서 새로운 법과 제도, 규칙을 만들 때는 그 이유가 있다. 국민의 권익 신장, 국가 경쟁력 강화, 불합리성 개선, 미비점 보완과 같은 보편타당의 배경을 고려한다. 그리고 이런 제도들은 그 규정이 가지고 있는 필요성과 순기능에 집중해 실행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제도나 규정을 운영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제도의 도입 취지가 좋아도 운영자가 제도의 허점이나 미비점 그리고 편법을 이용해 제도와 다른 취지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것이 바른 일이라 자기합리화 한다면 제도의 순기능은 빛을 잃고 개혁의 염원도 사그라들고 말 것이다.

검찰개혁은 왜 추진됐을까, 새로운 제도는 왜 도입되고, 말만 중립적인 인사는 왜 하는 것이며 정치는 왜 행해지는 것일까. 검찰 개혁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검찰은 결국 권력의 그늘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또 다시 새로운 제도 마련이 필요할까, 이 모든 것이 국민의 시름만 하나 늘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든다.

배성준 부장(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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