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탈을 쓴 여성혐오…흉터로 남은 줄리 벽화

정경훈 2021.07.31 05:47
벽화 '쥴리의 남자들'이 각계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의 불확실한 사생활 의혹을 비난하려는 의도로 그린 그림이다. 여권 강성 지지층에서는 벽화를 표현의 자유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다수 법조계 전문가와 정치권 인사, 시민들은 "여성혐오적"이라는 등의 비판을 제기했다. 법조계에서는 '명예훼손' 처벌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쥴리 아니다" 김건희 해명에도…제작 2주 지나 터진 '쥴리 벽화' 논란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벽면에 그려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배우자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 문구가 페인트로 지워져 있다. 2021.7.30/뉴스1
31일 취재를 종합하면 벽화 '쥴리의 남자들'(쥴리 벽화)은 28일 전후로 온라인을 통해 널리 퍼지며 논란을 일으켰다. 서울 종로구 종각역 '젊음의 거리' 인근 위치한 중고 서점 건물 외벽에 그려진 그림으로, 골목에 있지만 행인 통행량이 많은 곳이다.

쥴리 벽화는 서점 주인의 의뢰로 2주 전쯤 그려졌다고 알려졌다. 벽화 길이는 세로 약 2미터(m), 가로 약 15m다. 골목 입구의 한 벽화에는 여성 얼굴 그림과 함께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옆 벽화에는 '쥴리의 남자들' 문구가 적혔다. 그 옆으로 '2000 아무개 의사' '2006 양검사' '2009 윤서방 검사' 등 몇몇 남성을 가리키는 글씨가 있었다.

벽화는 김씨가 과거 유흥업소 접객원이었다는 말을 토대로 제작됐다. 최근 여권 일각을 중심으로는 김씨가 '쥴리'라는 별칭을 쓰며 과거 강남 유흥주점에서 접객원으로 일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씨가 윤 전 총장을 만나기 전 검사 등과 동거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김씨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본인이 쥴리가 아니었다고 부인한 바 있다.


시민·정치권 갈등…여당에서도 "금도 넘었다" 비판


(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야권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입당원서를 제출한 뒤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입당은 지난 3월4일 검찰총장에서 사퇴한지 148일, 6월29일 대권도전을 선언한지 31일만의 일이다. 2021.7.30/뉴스1
쥴리 벽화가 있다는 소식이 퍼지자 온·오프라인에서 시민 사이 갈등이 벌어졌다. 여권 강성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해당 서점을 '성지'로 부르며, 김씨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다수 보였다.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보였다. 한편, 윤 전 총장 지지자나 여러 시민들 사이에서는 "금도를 넘었다" "모욕 주려는 의도 뿐"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벽화 앞을 찾아가며 근처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유튜버들은 28일부터 확성기가 달린 차량을 그림 앞에 세우는 등 벽화 전시에 항의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벽화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방하는 문구도 쓰였다. 일부 시민은 "(쥴리 벽화는) 표현의 자유"며 유튜버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까지 출동했다.

갈등은 정치권에서도 일어났다. 야권은 입을 모아 쥴리 벽화의 폭력성을 비난했다. 대표적으로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페이스북에 "정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것(쥴리 벽화)은 저질 비방이자 정치폭력이며,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인격 살인이기 때문"이라며 "인간에 대한 더러운 폭력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당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열린캠프는 29일 "쥴리 벽화는 금도를 넘은 표현"이라고 논평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민망하고 말하기 거북하다"고 애둘러 불편함을 표현했다. 고용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전날 "민주당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인격침해, 인격 살해 요소가 있는 표현은 자제되는 것이 옳다고 의견을 같이했다"고 했다.

비판이 일자 벽화의 문구는 지워졌다. 서점 주인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인권침해일 뿐 표현의 자유 아냐"…'명예훼손' 처벌 가능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벽면에 그려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배우자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 문구를 서점 관계자가 페인트로 지우고 있다. 2021.7.30/뉴스1
법조계에서도 쥴리 벽화를 향한 지탄과 '명예훼손'으로 처벌 가능하다는 관측이 이어졌다. 한국여성변호사회(회장 윤석희)는 전날 쥴리 벽화 전시와 관련한 성명을 내 "여성에 대한 혐오와 조롱은 폭력과 인권침해일 뿐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라고 했다.

여성변회는 "벽화를 제작한 당사자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벽화의 문구만을 삭제한 채 전시를 계속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넘은 개인의 인격권에 대한 공격이자 침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다수 전문가들도 "김씨 주가조작 의혹은 검증해야 하는 사안이지만, '쥴리 의혹'은 완전히 검증 영역 밖의 사생활"이라고 바라봤다.

익명을 요청한 법률가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는 헌법 제37조에 의해 질서 유지를 위해 제약될 수 있다"며 "이 취지를 구체적으로 실현한 것 중 하나가 형법상 명예훼손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쥴리 벽화 제작은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될 요건은 갖췄다"며 "'쥴리 의혹'이 실제면 사실적시 명예훼손, 가짜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가 적용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림을 지웠어도 처벌은 가능하다"며 "물건 훔친 뒤 다시 돌려줘도 절도죄가 성립되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다만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로, 김씨 측이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기소되지 않는다. 윤 전 총장 캠프 법률팀은 "국민에 대한 고소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벽화나 악의성 댓글 등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향후 상황을 검토한 뒤 대응 방향을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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