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도, 맥박도 없었다"…도로위 취객 치고 달아났는데 '무죄', 왜?

김효정 2021.09.19 13:00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새벽에 차를 몰다 도로에 누워있는 취객을 치고 도주해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가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울산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황운서)는 지난 7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A씨는 2018년 11월 새벽 3시 11분쯤 울산 동구의 한 도로에서 승용차를 운전하다 도로에 누워있던 60대 남성 B씨를 차로 친 후 도주했다. B씨를 발견한 환경미화원의 신고로 경찰이 도착했을 때 B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검찰은 A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도로교통법에 따라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내 피해자를 사망하게 하고도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하거나 도주 후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가중처벌된다. 다만 도주치사 혐의가 성립하려면 교통사고 당시 피해자가 살아있는 상태였음이 증명돼야 한다.

그러나 주변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에는 사고 당시 B씨의 비명이나 신음소리 등이 확인되지 않았다. 사고 발생 10분도 지나지 않아 B씨를 발견한 환경미화원과 경찰관도 당시 B씨에게 의식과 맥박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사고 당일 작성된 사망진단서에는 B씨의 사망 원인이 '상세불명의 심장정지'라고 기재돼 있으나 수사기관이 B씨에 대한 부검을 실시하지 않아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방법도 없는 상태였다.

1심은 이 사건에서 B씨가 사고 당시 생존하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보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웠던 점, B씨가 평소에 비해 과음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을 더해 이 사고 전 다른 질병에 의해 쓰러져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B씨가 사고 당시 만취상태가 아니었고 두터운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술집에서 나선 새벽 2시 21분부터 사고가 발생한 3시 11분 사이에 돌연사로 사망했을 확률이 지극히 낮다며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B씨가 사망하기 일주일 전까지도 심혈관계 질환에 관한 치료를 받는 등 돌연사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질병을 장기간 앓았던 점까지 보태어 보면 원심판결에는 검사가 지적하는 바와 같은 사실오인이나 법리오해의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