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에 나이 있냐" 미성년 리얼돌 통관 논쟁

[서초동살롱]일반 리얼돌 통관 허용한 대법원, 미성년 리얼돌은 불허 판결

김종훈 2021.11.28 08:30
/사진=뉴스1
대법원의 미성년 리얼돌 통관 금지 판결로 리얼돌 논쟁이 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건전한 성 도덕의 보호와 사생활의 자유 중 무엇이 우선하느냐는 물음에 국회가 대답할 차례가 돌아왔다.


대법원 "16세 미만 여성 신체 외관 본뜬 성행위 도구" 통관 불허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25일 수입업자 김모씨가 "통관보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인천세관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김모씨가 통관하려 한 리얼돌의 크기, 신체묘사 등을 볼 때 미성년의 신체를 본뜬 것으로 보여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물품의 전체 길이와 무게는 16세 여성의 평균 신장과 체중에 현저히 미달하고 얼굴 부분도 안돼 16세 미만 여성의 인상에 가까워 보인다"며 "신체 외관도 미성숙한 모습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보면 16세 미만 여성의 신체 외관을 사실적으로 본떠 만들어진 성행위 도구"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16세 미만'을 언급한 것은 형법 제305조 제2항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19세 이상의 성인이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행위를 할 경우,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받는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아직 온전히 갖지 못한 16세 미만 미성년의 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념이 담겨있고, 이런 이념에 따르면 미성년 리얼돌 통관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리얼돌에 나이 있냐" 미성년 여부 판단은 어떻게?


판결 이후 '리얼돌이 성인을 본뜬 건지 무슨 기준으로 확인할 거냐'는 등 반발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2015년 6월에 있었던 청소년성보호법(아청법) 제2조 제5호 등에 대한 위헌제청 사건을 참고할 만하다.

이 법률에서는 실제 아동·청소년이 출연하는 음란물뿐 아니라, 아동·청소년처럼 보이는 음란물을 소지하는 행위도 처벌하고 있다. 교복이 등장하는 음란 애니메이션을 유포했다가 재판에 넘겨진 A씨가 이 조문은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을 신청했다.

A씨는 실제 아동·청소년이 등장하지 않는 애니메이션까지 처벌 대상으로 삼은 것은 기준이 모호하다고 주장했으나, 헌재는 합헌 5, 위헌 4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어떤 기준으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미성년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 합헌에 선 다수의견은 "표현물의 묘사 정도나 외관만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이러한 표현물을 등장시켜 각종 성적 행위를 표현한 화상 또는 영상 등 매체물의 제작 동기와 경위, 표현된 성적 행위의 수준,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 전체적인 배경이나 줄거리, 음란성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할 뿐만 아니라 표현 방법 등이 컴퓨터 그래픽 등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계속 발전해가고 있어, 구체적으로 어떠한 표현물이 이에 해당할 것인지를 미리 예상하여 법에서 열거하거나 일률적으로 정해놓는 것은 곤란한 측면이 있다"며 "그 처벌대상을 정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 개방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리얼돌도 애니메이션과 비슷하게 크기와 무게, 신체 묘사와 판매 광고 등 구체적 요소를 고루 따져 미성년을 본뜬 것인지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리얼돌과 성 범죄, 무엇이 먼저인가


이에 대해 헌법재판관 4명이 제시한 반대의견도 곱씹어볼 만하다. 반대의견은 "가상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의 접촉과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하는 성범죄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된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상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경우 실제 아동·청소년이 그 제작 과정에서 성적 대상으로 이용되지 않음에도 잠재적 성범죄의 촉매가 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경우와 동일하게 위와 같이 중한 형으로 규율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이 반대의견에 기초한다면, 미성년 리얼돌을 아동·청소년 성범죄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게임중독에 대한 오해와 같은 오류라고 볼 여지도 있다.


우리나라도 관련 법 논의할 때 됐다


해외 매체에 따르면 미국은 플로리다, 테네시, 켄터키, 하와이 등에서 미성년 리얼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작성한 '아동형체 리얼돌 성범죄화에 관한 영미국가 입법동향 비교 분석' 논문에 따르면 영국은 아동형체 리얼돌 관련 범죄와 아동대상 성범죄 사이 잠재적 연관성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리얼돌의 음란성과 리얼돌 소지자의 소아성애 성향 등을 따져 기소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호주는 외관상 18세 미만 미성년으로 인식될 수 있고 성행위 목적으로 제작됐다고 판단되면 소지 행위 자체를 중범죄로 취급한다. 이 같은 해외 사례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도 입법을 통한 리얼돌 규제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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