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법률주의와 법령 개정

화우의 조세전문 변호사들이 말해주는 '흥미진진 세금이야기'

이경진 2021.12.05 13:35
(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조세정책)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다. 2021.10.6/뉴스1

세법의 기본원칙 중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조세법률주의라 할 것이다. 조세법률주의 원칙이란, 과세요건 등 국민의 납세의무에 관한 사항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제정한 법률로써 규정하여야 하고 그 법률을 집행하는 경우에도 이를 엄격하게 해석, 적용하여야 하며, 행정편의적인 확장해석이나 유추적용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법률의 위임없이 명령 또는 규칙 등 행정입법으로 과세요건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거나 법률에 규정된 내용을 함부로 유추 확장하는 내용의 해석규정을 마련하는 것은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된다.

조세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처분의 근거가 되는 법률 및 시행령, 시행규칙을 해석함에 있어 조세법률주의 위반 여부가 쟁점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대법원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이하 '상증세법') 제41조의 '특정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증여의제' 규정과 관련된 동법 시행령 제31조 제6항이 법률의 위임범위를 벗어나 무효인지 여부가 쟁점이 된 사안에서 위 시행령 제31조 제6항이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따라 위임범위를 벗어나 국회가 법률로 정하여야 할 사항인 과세요건을 창설하여 무효이고, 이에 근거한 과세처분 또한 무효라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특정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증여의제 규정을 살펴보자. 특정법인이란 그 용어가 매우 생소한데, 상증세법은 지배주주와 그 친족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보유하는 주식보유비율이 30% 이상인 경우 '특정법인'이라고 하고, 이러한 특정법인이 지배주주와 그 친족(이하 '지배주주 등')으로부터 재산이나 용역을 무상으로 제공받거나 통상적인 거래관행에 비춰 현저히 낮은 대가로 양도? 제공받거나 높은 대가로 양도? 제공하는 등으로 특정법인이 이익을 얻은 경우 그 이익을 특정법인의 주주 등이 직접 지배주주 등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보아 해당 주주에게 증여세를 과세하는 것이다.

최근 대법원에서 무효라고 판단한 2014년 개정 후 상증세법 시행령 제31조 제6항(이하 '2014년 개정된 시행령') 이전에 시행되었던 같은 조항, 즉 2014년 개정 전 시행령도 조세법률주의를 위배하여 무효인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당초 상증세법 제41조 제1항(이하 2003년 개정 법률)은 결손금, 휴폐업 중인 특정법인의 주주 등과 특수관계에 있는 자가 일정 거래를 통하여 당해 특정법인의 주주 등이 이익을 얻은 경우에는 그 이익에 상당하는 금액을 특정법인의 주주 등의 증여재산가액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제2항에서 그 이익의 계산방법을 대통령령에 위임하였었다.

요컨대 2003년 개정 법률 조항은 최대주주 등이 '그 이익을 얻은 경우'를 전제로 그 이익의 계산만을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음에도 2014년 개정 전 시행령은 '특정법인이 얻은 이익이 바로 주주 등이 얻은 이익'이 된다고 보아 증여재산가액을 계산하도록 하였다. 이에 대법원은 2014년 개정 전 시행령은 모법인 2003년 개정 법률 조항의 규정 취지에 반할 뿐만 아니라 그 위임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하여 위 시행령은 무효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런데 2014년 개정된 시행령 제31조 제6항은 상증세법 제41조에서 특정법인의 개념을 확대하여 규정함에 따른 이중과세를 고려하여 수증자의 증여이익을 산출하면서 특정법인이 부담한 법인세를 공제하는 것으로 그 내용을 일부 변경하였으나, 개정 전 시행령과 마찬가지로 특정법인에 대한 재산의 무상제공 등이 있으면 별도로 주주 등이 이익을 얻었는지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그 자체로 주주 등이 이익을 얻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어 개정 전 시행령과 동일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즉 2014년 개정된 시행령도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주주 등이 실제로 얻은 이익의 유무나 다과와 무관하게 증여세 납세의무를 부담하도록 정한 점에서 조세법률주의 위배가 쟁점이 된 것이다. 이에 최근 대법원은 이전 판시와 같이, 2014년 개정된 시행령이 모법인 2014년 개정 상증세법 규정 취지에 반할 뿐만 아니라 그 위임범위를 벗어나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따라 마땅히 국회가 법률로 정하여야 할 사항인 과세요건을 창설한 것으로서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요약하면 법 취지는 특정법인과의 거래를 통해 주주가 이익을 얻었다는 점이 인정된 경우에 한하여 증여세 과세를 하도록 하였는데, 시행령은 특정법인과의 거래에 따라 그 자체로 주주 등이 이익을 얻은 것으로 간주하여 증여세를 과세하도록 규정함으로써 법률의 위임범위를 벗어나 조세법률주의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개정 과정에 비추어보면, 과세당국은 법률의 위임범위를 벗어난 시행규칙, 또는 시행령이 조세법률주의에 위반되어 무효라는 판결이 선고되면 내용은 동일하게 그대로 둔 채 단지 시행규칙에 규정되었던 것을 시행령으로 옮겨 규정하거나, 법률에서 그 내용을 시행령에 위임하는 등의 규정을 새로 만드는 등 임시변통적인 해결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법 취지에 맞도록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아 개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나아가 이러한 법취지에 맞는 개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조세 법률에 대한 납세자의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라 할 것이다.

이경진 변호사
[이경진 변호사는 삼일회계법인 조세변호사를 거쳐 서울지방국세청 송무과장, 중요소송T/F 팀장으로 재직하면서 법인세, 국제조세, 상증세 등 다양한 세목의 수많은 사건을 처리했다. 국세청과 회계법인에서 쌓은 실무경험과 조세법 지식을 바탕으로 각종 조세문제에 대한 자문 및 심판, 소송사건을 수행하고 있으며, 국세청 국세심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 후 현재는 서울고등검찰청 국가송무상소심의위원회, 국세청 정보공개위원회를 포함한 각종 위원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편, 국세청 조사관을 대상으로 전략적 소송수행기법에 관한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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