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랄한 사기꾼들이 호의호식하는 세상에 '빡친' 그 변호사의 사기꾼 추적기

[MZ 변호사가 뜬다] 천호성 법률사무소 디스커버리 대표 변호사

성시호, 유동주 2022.08.16 11:04
천호성 변호사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사기꾼들이 떵떵거리며 잘 살고, 피해자들이 피눈물 흘리는 현실이 역겹다"

사기가 싫어서 유튜버들과 직접 사기꾼을 뒤쫓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과 웹사이트로 피해 사례를 알리는 변호사가 있다.

천호성 변호사(법률사무소 디스커버리)는 사기 피해자들의 법률대리를 주로 맡는 9년차 법조인이다. 법무법인을 거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의 특별수사관으로 일했다.

최근 천 변호사는 자동차 관련 사기를 주로 다루는 유튜브 채널의 단골 자문 변호사로 출연하고 있다. 그는 다른 변호사들처럼 사무실에 앉아 상담을 하기도 하지만 범죄를 막거나 사기꾼을 잡는 현장에 직접 나간다. 대포차로 팔린 피해자 명의 차량을 찾는 현장이나 사기꾼이 피해자를 만나 사기를 치는 현장을 급습하기도 한다.

지난 22일 새벽에도 그는 경기 성남수정경찰서 주차장에서 밤을 새워야 했다. 지방에서 운행중인 대포차를 어렵게 찾았는데 쫓아온 대포차 업자가 차 앞에 드러눕고 명의 피해자가 차를 가져가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연락을 받아서다. 함께 밤샘 대치 현장에 출동한 유튜버 '카라큘라', '임마뉴엘' 그리고 천 변호사가 없었다면 피해자는 어렵게 찾은 자신의 명의 차량을 대포차 업자에게 다시 빼앗길 수도 있었다.

사기 범죄를 알려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직접 개설한 유튜브 채널의 이름은 '빡친변호사'다.

천 변호사에게 사기를 피하는 방법을 물었다.

-최근 자동차 관련 유튜브 채널에 자주 출연하게 된 계기가 있나.

▶우연한 계기로 유튜브에 출연하게 됐고 자동차 관련 자문을 해 주면서 '카라큘라','까레라이스' 등 유튜버들과 알고 지내게 됐다. 이들에게 내가 도움을 많이 받기도 한다.

- 사기 피해 사건을 주로 맡고 있던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다. 재산범죄 피해자를 대리하며 사기꾼들의 악랄함을 깨달았다.

▶친척이 지방에서 사업을 하다 동업자에게 수십억대 횡령·배임 피해를 당해 5년째 다투고 있다. 특검에서 업무를 마칠 무렵 법률대리를 맡아 상대방을 고소했고, 1심에서 피해액 40억여원이 인정돼 징역 4년 실형이 선고됐는데 재판부가 법정구속을 안 했다.

▶그 친척은 가해자의 항소심 재판 도중 피해금 반환을 요구하러 찾아갔다가 가해자가 몰던 차량에 치였다. 고의적인 돌진이었는데 법원에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더라. 전관 변호사와 향판의 폐단이 작용하지 않았나 의심했다. '완도군 노화도 차량 추돌사건'으로 MBC 실화탐사대에도 방영된 내용이다. 결국 언론 밖에 호소할 곳이 없었다.

▶가해자는 2심에서 형량이 징역 5년으로 가중됐고 결국 법정구속됐지만 정말 화가 났다. 피해자는 애가 타는데, 가해자는 유죄판결을 받고도 빼앗은 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비웃는 걸 구속 전까지 지켜봐야만 했다. 그때는 수사 과정에서도 무력함을 느꼈다. 경찰에 고소장을 냈더니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않아서 여러 차례 항의했는데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피해금 반환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별도로 제기해서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을 받아내고 10만여건에 달하는 계좌 거래 내역을 일일이 정리한 다음 검찰에 보내야 했다. 판사가 허가했는데 법원 직원이 모른 척 하거나 법원이 허락했는데도 은행들이 협조를 안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런데 자료를 전송했을 때도 검찰 측에서 메일을 수신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해 사건 처리가 1년이나 지연됐다(웃음).

-형사재판에서 변론하는 변호사의 모습은 대중매체에도 자주 나오지만, 사기 등 재산범죄 사건에서 피해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는 조금 생소하다. 주로 어떤 역할을 하나.

▶증거를 모으는 일이 핵심이다. 나는 특히 액수가 크고 사실관계가 복잡한 재산범죄의 경우 고소를 먼저 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피해자가 많은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아주 단순한데, 수사기관이 무능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민사소송을 먼저 제기해 상대방의 계좌 내역이라도 확보하고 나서 검경에 증거물로 제출하는 게 유리하다고 본다.

▶재산범죄 피해자 법률대리는 피해 회복도 업무 비중이 크다. 민사소송으로 계좌 내역을 밝히면 증거를 수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차명계좌로 재산을 은닉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수사기관은 처벌에 중점을 두지만, 사실 사기 피해자 입장에선 돈을 돌려받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겠나.

-기자들도 법정에서 사기 피해자들을 자주 본다. 울거나 소리치는 이들이 기억에 남던데.

▶피해자로부터 가해자의 근황을 듣다보면 기가 찬다. 고소해서 수사·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여행을 다니고, 쇼핑이나 성형수술을 한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랑하는 사례도 있다. 이렇게 가해자가 떵떵거리며 사는 모습을 보고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괴감을 느낀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대기업에 다녀도 한 달에 많아야 300만원 정도 저축하지 않나. 1년 모아봤자 3000만원 남짓 나오는데, 1억짜리 사기를 당한다고 가정하면 자기 인생의 3년이 녹아 없어지는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재산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도 대폭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오래전의 판례가 지금까지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가 한다.

천호성 변호사(법률사무소 디스커버리).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피해 사례들에 대한 경험을 살려 독자들에게 조언할 수 있나.

▶사기를 당하지 마라. 소송은 생각보다 실효적인 권리구제 수단이 아니다. 그리고 돈이 없다고 사기를 당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범죄자들이 접근하는 경우가 흔하다.

▶때로는 재판이 거짓말 경연대회로 둔갑할 때도 있다. 가끔 '저게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위 진술을 밥 먹듯이 하는 사기꾼을 법정에서 마주친다. 안타깝게도 판사·검사·경찰관, 심지어 변호사도 거짓말을 모두 알아챌 수는 없다. 운이 나쁘다면 그들은 일부러 모른척할 수도 있다. 모두가 당신의 사건만을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비해야 사기에 걸려들지 않을까.

▶절대로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지 마라. 자동차 명의도용 사기를 예로 들겠다. 병원비 등 예상치 못한 지출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사기꾼이 접근해 '이름만 빌려달라'고 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명의를 빌려주면 할부로 외제차를 구입해서 대금은 자기들이 알아서 갚을 테니 수고비를 200만원~300만원 주겠다고 꾀어내는 식이다. 이때 가해자는 대개 한두 달 할부대금을 내주는 척하다 잠적하고 차량은 대포차로 팔아버린다. 결국 피해자는 본 적도 없는 차량에 대해 매달 할부대금을 꼬박꼬박 납입해야 하는 신세가 된다. 차량 추적은 실무적으로 매우 까다롭다. 금융 지식이 없는 20대들이 자주 당해 안타깝다.

▶현금으로 직접 거래하지도 마라. 특히 돈을 빌려줄 때는 차용증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차용증이 있더라도 녹취록처럼 현금을 준 사실을 입증할 추가 증거가 없다면, 상대방이 거래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 있다. 반드시 계좌이체를 하는 등 객관적인 흔적을 남겨야 한다. 송금을 받은 사람이 자신의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잖나. 상대방이 그걸 마다하고 갖은 핑계를 대며 현금을 달라고 요청한다면, 그 사람은 불법행위를 꾸미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인간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금을 준다면 꼭 차용증을 요구하고 상대방과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휴대폰 메시지로 증거를 남겨라.

▶큰 돈이 나가는 일이라면 최소한 하루는 고민했으면 좋겠다. 당장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거나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마지막으로, 지인이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다며 특정한 요구를 할 때는 반드시 의심해야 한다. 사기는 서로 아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모르는 사람이 별안간 내 돈을 털어가는 일은 사기가 아니라 절도·강도로 일어난다고 생각해도 좋다.

천호성 변호사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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