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前회장 이례적 징역 10년 중형…핵심 가른 '네돈내산'

심재현, 이세연 2022.08.18 18:26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를 받는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례적이란 말이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깜짝 놀란 판결이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서울지역 현직 판사)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징역 10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것을 두고 선고 이튿날인 18일까지 법조계와 재계가 술렁인다. 현직은 아니지만 대기업 총수에게 중형이 선고된 데다 검찰이 구형한 형량이 판결에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검찰 주요 보직에 기업·권력형 비리 사건을 다루는 특수부 라인이 대거 임명된 데 이어 법원 양형에서도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엄벌주의가 강화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고개를 든다.

대기업 총수 가운데 박 전 회장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은 사례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징역 15년이 확정됐던 한보사태의 정태수 전 회장과 1조원대 사기성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발행해 수만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혐의 등으로 2014년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정도가 손에 꼽힌다.

박 전 회장의 주요 혐의 중 하나인 횡령·배임의 경우 대법원 양형 기준이 횡령 규모 300억원 이상일 때 징역 5~8년, 가중요소가 있을 때라도 7~11년 수준이다. 박 전 회장과 비슷한 규모의 횡령 범죄에서는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가 적잖았다. 박 전 회장이 77세의 고령이고 초범이라는 사정을 차치하더라도 징역 10년은 이례적이라는 얘기가 이어지는 이유다. 박 전 회장의 범행을 도운 혐의 등으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전직 임원들도 각각 징역 3~5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판결문에서 드러나는 재판부의 선고 취지는 사익을 위해 기업과 국가경제에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끼친 범죄를 엄단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조용래)는 전날 선고에서 "박 전 회장이 일련의 범행에 대해 그룹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변하지만 본질은 계열사를 희생해서라도 지배권을 회복하겠다는 사익 추구에 지나지 않는다"며 "개인회사를 위해 계열사를 이용하는 것은 기업 건전성과 투명성을 저해하고 경제 주체들의 정당한 이익을 해할 뿐 아니라 손실을 다른 계열사에 전가하는 등 파급 효과가 매우 크다"고 했다.

박 전 회장이 개인회사인 금호기업을 통해 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장악하려 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계열사 4곳에서 3300억원을 빼돌려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산업 주식을 금호기업이 인수하도록 했고 5800억원 상당의 금호터미널 주식 전부를 금호기업에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넘기게 했다는 것이다. 결국 '네돈내산'(너의 돈으로 내가 샀다)이 중형 선고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보면 사건의 주요 쟁점이 '계열사 부당지원'이 아니라 '개인회사 부당지원'에 해당한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이 적용되면서 중형이 선고된 것 같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대기업 총수의 도덕적, 법적 책임을 엄중하게 보는 최근 분위기와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며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사익을 위해 기업을 사적 용도로 이용한 것을 봐주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법조계에서는 또다른 중형 선고의 배경으로 피해액 변제와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도 꼽는다. 아시아나항공이 소유한 금호터미널 주식을 금호기업에 저가 매각한 부분(배임)은 3100억~3200억원(금호터미널 주식 100%의 적정가치 5800억~5900억원에서 실제 매각대금 2700억원을 차감한 금액)에 달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지적한대로 "그룹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계획적으로 대규모 공적자금이 지원된 계열사 돈을 빼내 또 다시 손실을 키웠고 겉으로 드러난 계열사 피해보다 국가 전체에 입힌 피해가 크다"고 봤다.

박 전 회장이 항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상고심에서 형량이 유지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피해액 산정을 두고 다툼 소지가 있고 기업을 경영하면서 업무상 횡령·배임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현직 판사는 "대기업 총수에 대해 징역 10년 실형을 선고한 것을 두고 법원 내부에서도 화두가 됐다"며 "화이트칼라 범죄 봐주기 논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맞물려 각각의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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