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빨간불'에 무단횡단 하던 사람 '쿵'…처벌 받을까?

[the L 법률상담]

박윤정 (변호사) 기자 2018.12.17 05:05

자동차 운전자에게는 횡단보도에서 일시 정지해 전방 및 좌우를 잘 살펴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는지 여부를 잘 살펴 사고를 방지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자동차를 운전하다 이러한 주의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치어 사망에 이르게 하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1항에 따라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그렇다면 운전자의 주의의무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요? 운전자에게 차량 진행신호가 들어온 지 한참 만에 보행자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를 발견해 사고를 방지할 주의의무까지 있다고 봐야 할까요?

서울북부지법은 최근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정지신호를 위반해 보행하던 보행자를 치어 사망에 이르게 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로 기소된 화물차 운전자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서울북부지법 2018. 10. 4. 선고 2018고단1488 판결).

화물차 운전자 A씨는 2018년 3월7일 15시20분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편도 3차로 도로의 1차로를 따라 화물차를 시속 약 39km 정도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A씨의 화물차가 횡단보도 약 100m 앞으로 진행할 당시 2, 3차로에는 보도 앞에 신호대기하는 차량들이 정차해 있었고 1차로에는 정차한 차량이 전혀 없었습니다. A씨의 화물차가 횡단보도 전방 약 80m 지점에 다다를 무렵 횡단보도 위에 설치된 차량 진행신호가 청색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횡단보도에는 보행자 신호가 적색으로 바뀐 직후에도 A씨의 진행방향 우측에서 좌측으로 신호를 위반해 보행하던 여러 명의 보행자가 있었는데 이들이 모두 도로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간 뒤 간격을 두고 피해자 B씨가 뒤늦게 오른쪽 2차로에 정차하고 있던 트럭 앞으로 갑자기 나타났고, A씨가 이를 미처 보지 못하고 그대로 화물차를 진행하는 바람에 피해자 B씨는 화물차에 치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검찰은 A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보행자 정지신호였다고 해도 다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으므로 운전자인 A씨로서는 일시 정지해 전방 및 좌우를 잘 살펴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조향 및 제동장치를 정확히 조작해 사고를 방지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거였습니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A씨에게 그런 주의의무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재판부는 먼저 ‘자동차의 운전자는 통상 예견되는 사태에 대비해 그 결과를 회피할 수 있는 정도의 주의의무를 다함으로써 족하고 통상 예견하기 어려운 이례적인 사태의 발생을 예견해 이에 대비해야 할 주의의무까지 있다 할 수 없다(대법원 85도833 판결)’고 전제했습니다.
 
이어 재판부는 ‘△ 보행자들도 차량의 진행신호 중에는 도로를 횡단해서는 안 되는데 당시 1차로를 운행하던 피고인으로서는 이미 차량의 진행신호가 켜졌고 전방의 선행 무단 횡단자들이 피고인 차량의 진행방향 차로를 모두 건너 반대편 차로에 진입했으므로 자신이 인지한 선행 무단 횡단자들에 대한 사고방지 주의의무는 이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 △ 사고 지점은 차량 진행신호가 들어온 지 제법 시간이 경과한 때이므로 피고인이 선행 무단 횡단자들 이외에 추가 무단 횡단자가 더 있을 거라 예측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이는 점, △ 운전자들에게 차량 진행신호가 켜진 후에도 여전히 횡단보도에서 일시 정차하는 등의 방법으로 더 이상의 무단 횡단자가 있는지 여부를 살필 주의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한 것으로 보이는 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교통사고분석 감정 내용에 따르면 피고인의 차량에서 피해자 B씨가 보이기 시작한 지점은 약 12m 내외의 거리인데 피고인이 운전 중 피해자를 인지하고 제동해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는 최소 20.8m 이상의 거리가 필요하므로 설령 피고인이 피해자를 발견했더라도 충돌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을 종합할 때, 피고인 A씨에게 운전자에게 요구되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해 사고를 일으켰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하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보행자 신호가 적색으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바뀐 직후에는 여전히 횡단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서행 혹은 일시 정차해 사고를 방지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이미 선행 무단 횡단자들이 도로 반대편으로 이동한 상태였고, 그 후 시간 간격을 두고 피해자가 갑자기 나타난 상황이었으므로 운전자가 그런 이례적인 상황까지 예측해 사고 발생을 방지할 주의의무까지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 관련 규정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처벌의 특례) 
① 차의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인하여 「형법」 제268조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268조(업무상과실·중과실 치사상)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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