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건설

[친절한 판례氏] 조례 개정해서 120억 부담금 더 물린 지자체

폐기물 부담금에 주민편익시설 비용까지 부과, 대법 "법령 위임한계 벗어난 무효 조례" 파기환송

황국상 기자 2019.02.19 07:00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가 개인·기업에 의무를 부과하거나 자유를 제한할 때, '공익'이라는 단어는 단골처럼 등장한다. '공공에 이만큼 이익이 되니, 일정 정도의 불이익은 감수하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공익이라는 명분도 함부로 남용돼서는 곤란하다. 법령의 정당한 위임이 없이 사업 시행자에게 100억원 이상의 부담금을 물릴 수 있게 했던 지자체 조례의 무효여부를 다툰 판례(2018년 11월29일 선고, 2016두35229)가 있어 소개한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신원동·원지동 일대 81만여㎡(약 24만5500여평)에 보금자리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의 시행사인 서울주택도시공사(옛 SH공사)는 2011년 12월 사업지구 안에 폐기물 처리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폐기물 시설의 설치비용에 해당하는 만큼의 폐기물 부담금을 납부하기로 하고 서초구청에 30억4700여만원을 납부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했다. 이 금액은 당시 서초구 조례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이듬해인 2012년 10월 서초구청은 종전 조례(서초구 폐기물 처리시설 설치비용 징수와 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를 개정한 후 주택도시공사에 새 조례에 근거한 폐기물 부담금을 내라고 요청했다. 새 조례에 근거해서 산정된 부담금은 150억8100여만원으로 종전 조례에 근거에 산정된 금액보다 무려 120억원 이상 더 많았다. 개정된 조례에 따른 폐기물 부담금에는 폐기물 처리시설 설치비용 뿐 아니라 일정 규모의 주민편익시설 부지매입 비용까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주택도시공사는 서초구청의 150억8100여만원의 부담금 처분 중, 종전 공사가 이미 납부하기로 한 30억4700여만원을 초과한 부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개정된 새 조례가 아니라 개정 이전의 조례가 적용돼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2심에서는 원고 패소로 뒤집어졌다. 2심 재판부는 "개정 전 조례 시행 당시에 부담금 납부계획서를 제출한 사업 시행자에 대해 개정 후 조례를 적용하는 것이 시행자에게 불리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납부계획서를 제출한 사정만으로는 부담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사실 또는 법률관계가 새 조례 시행 전에 이미 완성·종결됐다고 볼 수 없다"며 개정 후 조례를 적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개정 후 조례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은 폐기물 부담금에 대한 적정 기준을 수립해 사업 시행자와 피고(서초구청) 사이의 법적 분쟁을 예방하고 처분 당시를 기준으로 폐기물 시설에 대한 합리적 설치비용을 확보해 환경 보전과 국민 생활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려는 것"이라며 "이같은 공익은 침해되는 사업자의 기대이익보다 크다. 개정 전 조례의 존속에 대한 시행자의 신뢰가 새 조례 적용에 따른 공익상 요구보다 더 보호가치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같은 원심의 판단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대법원은 "(서초구청 조례의 상위 규정인) 폐기물시설촉진법 법령 규정의 문언·체제 등에 비춰보면 사업 시행자가 설치해야 할 폐기물 시설에는 주민편익시설이 포함돼 있지 않다. 주민편익시설을 설치할 의무는 지자체장 등에게 있고 사업 시행자에게는 그 의무가 없다"며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지자체는) 주민편익시설 설치비용을 시행자에게 전가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주민편익시설은 폐기물 시설에 당연히 포함되거나 부대되는 시설이 아니다"라며 "시행자에게 주민편익시설 설치비용 금액까지 납부할 의무를 부과하도록 규정한 조례규정이 유효하려면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위임이 없이 제정됐다면 조례는 그 효력이 없다고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심은 '시행자가 납부해야 할 폐기물 시설 설치비용에 주민편익시설 비용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구청장 등이 자신의 계산(주민의 세금)으로 주민편익시설까지 설치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결과가 돼 형평의 원칙에 반한다'는 등 이유로 부담금 부과처분이 적법하다고 봤다"며 "이는 조례에 관한 법률유보 원칙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하순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중순 원심 법원인 서울고법으로 넘어왔다. 파기환송심은 내달 중순 첫 변론이 예정돼 있다.

◇관련조항
지방자치법 제22조(조례)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다만,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규제 법정주의)
① 규제는 법률에 근거하여야 하며, 그 내용은 알기 쉬운 용어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② 규제는 법률에 직접 규정하되, 규제의 세부적인 내용은 법률 또는 상위법령(상위법령)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한 바에 따라 대통령령ㆍ총리령ㆍ부령 또는 조례ㆍ규칙으로 정할 수 있다. 다만, 법령에서 전문적ㆍ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한 경우에는 고시 등으로 정할 수 있다.
③ 행정기관은 법률에 근거하지 아니한 규제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6조(택지개발사업에 따른 폐기물처리시설의 설치 등)
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단지나 택지(택지)를 개발하려는 자는 그 공동주택단지나 택지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폐기물처리시설을 설치하거나 그 설치 비용에 해당하는 금액을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특별자치시장ㆍ특별자치도지사ㆍ시장ㆍ군수ㆍ구청장에게 내야 한다.
② 특별자치시장ㆍ특별자치도지사ㆍ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제1항에 따라 받은 금액을 해당 공동주택단지나 택지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한 폐기물처리시설을 설치하는 데에 사용하여야 한다.
③ 특별자치시장ㆍ특별자치도지사ㆍ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제1항에 따라 설치 비용에 해당하는 금액을 내야 할 자가 납부기한까지 내지 아니하면 지방세 체납처분의 예에 따라 그 금액을 징수한다.
④ 제1항에 따른 납부금액의 산정방법, 납부절차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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