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

[친절한판례氏] 법정관리 들어가도 과징금 내야 하나요

대법 "행정상 의무위반 후 회생절차 개시, 과징금 청구권은 회생채권"

황국상 기자 2019.04.23 05:00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국가는 거둬가야 할 돈을 악착같이 받아간다. 국세기본법, 지방세기본법 등 법령은 명시적으로 국세·지방세나 가산금, 징수금 등에 대해 여느 채권에 우선해 징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채무자회생법에서는 회생채권에 대해 국세 등과 별도로 '우선권'을 인정하고 있다.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아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에 대한 회생채권과 이 회사가 앞서 저지른 위법행위로 인한 국가의 과징금 징수채권 중 어느 것이 더 우선하는지에 대해 다룬 대법원 판결(2018년 6월12일 선고, 대법원 2016두59102)을 소개한다.

한솔페이퍼텍은 11개 제지업체와 함께 2007년 5월부터 2011년 7월까지 4년2개월에 걸쳐 사장단·임원진 모임과 실무진 모임 등을 통해 6차례에 걸쳐 종이제품 가격담합을 저질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한솔페이퍼텍에 21억7000만원 상당의 과징금을 물리기로 의결했다.

문제는 한솔페이퍼텍이 담합행위를 저지르는 기간 회생절차에 들어간 데서 발생했다. 한솔페이퍼텍은 2009년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해 그 해 7월16일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법원으로부터 받았다. 한솔페이퍼텍은 이듬해인 2010년 7월에 회생계획 인가를 받아 구조조정을 진행해 2011년 7월이 돼서야 회생절차를 종결했다.

회생절차란 법원이 주도해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조율해 진행하는 구조조정 절차를 이르는 용어다. 채무자회생법은 회생계획 인가 결정이 있는 때에는 회생계획이나 채무자회생법이 인정한 권리를 제외하고는 채무자가 모든 회생채권과 회생담보권에 대해 책임을 면한다고 규정했다. 주주·지분권자의 권리와 채무자 재산상에 있던 담보권도 모두 소멸한다.

한솔페이퍼텍은 "회생절차 개시결정 이전에 이뤄진 2007년 6월부터 2009년 7월까지의 담합에 대한 공정위의 과징금 청구권은 회생채권으로 신고되지 않아 소멸했다. 공정위의 처분은 소멸한 과징금 청구권을 행사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공정위는 "문제가 된 담합행위는 하나의 공동행위이고 회생절차 개시 후에 종료됐다"며 "문제가 된 담합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과징금 청구권은 회생채권이 아닌 일반채권에 해당해 회생절차 개시 전에 이뤄진 부분에 대해서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서울고법과 대법원으로 이어진 소송에서 한솔페이퍼텍이 전부 이겼다. 서울고법은 "부당한 공동행위가 회생절차개시결정 이후에 종료됐다고 하더라도 회생절차개시 전에 이루어진 실행행위 부분에 관한 과징금 청구권은 회생절차 개시 전의 원인으로 생긴 재산상의 청구권"이라며 "회생법원에 신고되지 않았다면 회생계획인가결정에 의해 채무자는 면책된다. 회생절차개시 후에도 부당한 공동행위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 실행됐다더라도 이미 면책된 회생절차개시 전 실행부분에 관해서는 과징금 부과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회생절차가 개시된 사업자 외의 다른 담합가담자들에 대해서는 그 수회의 합의를 전체적으로 1개의 부당한 공동행위로 평가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더라도, 회생절차가 개시된 그 담합가담자가 회생절차개시 이전에 한 합의에 대한 과징금 청구권은 회생채권이 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한솔페이퍼텍 주장이 옳다고 봤다. 전체 4년여의 담합 중 절반에 달하는 기간의 담합행위에 대한 과징금 부과는 위법하다는 얘기다.

◇관련규정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
제118조(회생채권) 다음 각호의 청구권은 회생채권으로 한다.
1. 채무자에 대하여 회생절차개시 전의 원인으로 생긴 재산상의 청구권
2. 회생절차개시 후의 이자
3. 회생절차개시 후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금 및 위약금
4. 회생절차참가의 비용

채무자회생법
제148조(회생채권의 신고)
① 회생절차에 참가하고자 하는 회생채권자는 신고기간 안에 다음 각호의 사항을 법원에 신고하고 증거서류 또는 그 등본이나 초본을 제출하여야 한다.
1. 성명 및 주소
2. 회생채권의 내용 및 원인
3. 의결권의 액수
4. 일반의 우선권 있는 채권인 때에는 그 뜻
② 회생채권 중에서 일반의 우선권 있는 부분은 따로 신고하여야 한다.
③ 회생채권에 관하여 회생절차개시 당시 소송이 계속되는 때에는 회생채권자는 제1항 및 제2항에 규정된 사항 외에 법원ㆍ당사자ㆍ사건명 및 사건번호를 신고하여야 한다.

채무자회생법
제251조(회생채권 등의 면책 등) 회생계획인가의 결정이 있는 때에는 회생계획이나 이 법의 규정에 의하여 인정된 권리를 제외하고는 채무자는 모든 회생채권과 회생담보권에 관하여 그 책임을 면하며, 주주ㆍ지분권자의 권리와 채무자의 재산상에 있던 모든 담보권은 소멸한다. 다만, 제140조제1항의 청구권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제19조(부당한 공동행위의 금지)
① 사업자는 계약ㆍ협정ㆍ결의 기타 어떠한 방법으로도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것을 합의(이하 "부당한 공동행위"라 한다)하거나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행하도록 하여서는 아니된다.
1. 가격을 결정ㆍ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
2. 상품 또는 용역의 거래조건이나, 그 대금 또는 대가의 지급조건을 정하는 행위
3. 상품의 생산ㆍ출고ㆍ수송 또는 거래의 제한이나 용역의 거래를 제한하는 행위
4. 거래지역 또는 거래상대방을 제한하는 행위
5. 생산 또는 용역의 거래를 위한 설비의 신설 또는 증설이나 장비의 도입을 방해하거나 제한하는 행위
6. 상품 또는 용역의 생산ㆍ거래 시에 그 상품 또는 용역의 종류ㆍ규격을 제한하는 행위
7. 영업의 주요부문을 공동으로 수행ㆍ관리하거나 수행ㆍ관리하기 위한 회사등을 설립하는 행위
8. 입찰 또는 경매에 있어 낙찰자, 경락자(경락자), 투찰(투찰)가격, 낙찰가격 또는 경락가격,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결정하는 행위
9. 제1호부터 제8호까지 외의 행위로서 다른 사업자(그 행위를 한 사업자를 포함한다)의 사업활동 또는 사업내용을 방해하거나 제한함으로써 일정한 거래분야에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
② 제1항의 규정은 부당한 공동행위가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목적을 위하여 행하여지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요건에 해당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인가를 받은 경우에는 이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1. 산업합리화
2. 연구ㆍ기술개발
3. 불황의 극복
4. 산업구조의 조정
5. 거래조건의 합리화
6. 중소기업의 경쟁력향상
③ 제2항의 규정에 의한 인가의 기준ㆍ방법ㆍ절차 및 인가사항변경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④ 제1항에 규정된 부당한 공동행위를 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등은 사업자간에 있어서는 이를 무효로 한다.
⑤ 2 이상의 사업자가 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로서 해당 거래분야 또는 상품ㆍ용역의 특성, 해당 행위의 경제적 이유 및 파급효과, 사업자 간 접촉의 횟수ㆍ양태 등 제반사정에 비추어 그 행위를 그 사업자들이 공동으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에는 그 사업자들 사이에 공동으로 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것을 합의한 것으로 추정한다.
⑥ 부당한 공동행위에 관한 심사의 기준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하여 고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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