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조세

[친절한판례씨] '조세채권자' 국가의 3자에 대한 빚독촉, 언제든 가능할까

조세채권자인 국가의 채권자 대위권, 신탁 이후 위탁자에 대한 재산세 이유로의 행사는 불가

황국상 기자 2019.06.18 06:00

국가는 조세징수에 있어서 국민에게 채권자 지위에 선다. 반대로 국민은 누구나 국가에 조세채무를 진다. 조세채권은 소액 임차인의 임대차 보증금 등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 어지간한 채권보다 우선권을 가진다. 거래 등 이유로 성립된 통상의 채권을 가진 이들이 채무자를 상대로 돈을 받아가는 것보다 국가가 먼저 세금을 걷을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는 얘기다.

이에 기반해 국가는 특정인에 대한 조세채권을 실현하기 위해 그 당사자가 타인에 대해 보유한 채권을 대신 행사할 권리도 갖는다. 이른바 '채권자 대위권' 규정이다. 이를테면 세금 체납자가 타인에게서 받을 채권이 있을 때 국가가 이 체납자를 대신해서 제3채무자(이 경우 체납자의 채무자인 '타인')를 상대로 직접 채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해 빚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채권자 대위권도 항상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금 체납자가 자신 소유의 재산을 타인에게 신탁 방식으로 처분한 경우에도 국가가 수탁자를 상대로 채권자 대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다룬 대법원 판례(2019년 4월11일 선고, 대법원 2017다269862)를 소개한다.

2006년 9월 A사는 금융사에 대한 대출금 채무과 거래처에 대한 공사비 채무 등을 담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B사와 서울 모처 소재 건물에 대한 부동산 관리처분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이 신탁계약의 우선수익자는 A사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사나 A사로부터 돈을 받을 권리가 있던 거래처 등으로 지정됐다. 이 건물은 신탁계약 체결 당일 신탁을 이유로 B사 앞으로 소유권 이전등기가 됐다. 해당 건물은 2012년 다른 회사로 공매처분돼 다시 등기가 넘어갔다.

2015년이 돼서야 국가가 문제를 제기했다. A사가 182억여원 상당의 국세를 체납하고 있으니 국가가 채권자로서 B사를 상대로 채권자 대위권을 행사한다는 차원에서였다. 국가는 "B사가 2012년 과거 A사 소유였던 건물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받은 매매대금 중 A사가 내야 할 종합부동산세 체납분 1억8000만원을 B사가 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B사를 상대로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가 B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근거는 A사와 B사가 체결한 신탁계약의 한 구절 때문이었다. 이 계약 조항 중에는 수탁자(B사)가 신탁 부동산을 처분하는 등 방식으로 정산할 때 △부동산관리 및 공매절차에 따른 비용 △B사가 수취할 보수 △처분대금 수납시까지 고지된 재산세 등 당해세 △근저당권자 등에 우선하는 임대차보증금 △우선수익자의 채권 등을 순서대로 모두 제하고 남은 금액이 있을 때 이를 위탁자(A사)에 지급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중 국가는 두번째 항목인 '당해세' 부분을 근거로 B사에 A사가 지급해야 할 몫의 세금을 내라고 주장한 것이다.

1,2,3심은 모두 국가 패소 판결을 내렸다. 신탁계약상 '당해세' 부분은 B사가 당초 납세의무자로 부담하는 세금에 대해서만 국가에 세금납부 의무가 있을 뿐 A사가 냈어야 할 세금을 B사에 대신 납부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1심에서 패소한 국가는 2심, 3심을 잇따라 제기했으나 연패했다.

올 4월 대법원 제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조세 채권자인 국가는 납세의무자가 조세채무를 변제할 충분한 자력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제3자에 대한 권리를 실현하지 않을 때 채권자 대위권 행사를 통해 납세의무자의 일반재산을 확보·보전할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국가가 채권자대위 소송의 요건을 갖춰 납세의무자의 제3자에 대한 채권을 대위행사하는 것은 납세의무 없는 그 3자에게 조세채무를 부담하게 하거나 이를 보증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이로 인해 조세채권의 성립이나 행사의 범위가 임의로 확대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신탁계약상 '당해세'는 수탁자인 B사가 납부했어야 할 세금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국가의 청구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A사는 신탁계약상 B사에 대해 '당해세' 상당의 정산금 채권을 가지지 못하므로 국가가 A사를 대위해 이 정산금 채권의 지급을 구하는 예비적 청구도 기각한 원심 결론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관련조항
민법
제404조(채권자대위권) 
①채권자는 자기의 채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채무자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일신에 전속한 권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채권자는 그 채권의 기한이 도래하기 전에는 법원의 허가없이 전항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 그러나 보전행위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국세기본법
제27조(국세징수권의 소멸시효) 
① 국세의 징수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의 권리는 이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기간 동안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1. 5억원 이상의 국세: 10년
2. 제1호 외의 국세: 5년
② 제1항의 소멸시효에 관하여는 이 법 또는 세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민법」에 따른다.
③ 제1항에 따른 국세의 징수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국세기본법
제28조(소멸시효의 중단과 정지)

① 제27조에 따른 소멸시효는 다음 각 호의 사유로 중단된다.
1. 납세고지
2. 독촉 또는 납부최고(納付催告)
3. 교부청구
4. 압류
② 제1항에 따라 중단된 소멸시효는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난 때부터 새로 진행한다.
1. 고지한 납부기간
2. 독촉이나 납부최고에 의한 납부기간
3. 교부청구 중의 기간
4. 압류해제까지의 기간
③ 제27조에 따른 소멸시효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기간에는 진행되지 아니한다.
1. 세법에 따른 분납기간
2. 세법에 따른 징수 유예기간
3. 세법에 따른 체납처분유예기간
4. 세법에 따른 연부연납(年賦延納)기간
5. 세무공무원이 「국세징수법」 제30조에 따른 사해행위(詐害行爲) 취소소송이나 「민법」 제404조에 따른 채권자대위 소송을 제기하여 그 소송이 진행 중인 기간
6. 체납자가 국외에 6개월 이상 계속 체류하는 경우 해당 국외 체류 기간
④ 제3항에 따른 사해행위 취소소송 또는 채권자대위 소송의 제기로 인한 시효정지의 효력은 소송이 각하ㆍ기각 또는 취하된 경우에는 효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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