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판례씨] 위법한 계약은 무조건 원천무효일까

대법 "미인가 금투업자와의 투자계약, 단속규정 위반이지만 계약무효 시킬 사항은 아냐"

황국상 기자 2019.07.02 06:00

사람들이 많은 만큼 사람들 사이 계약의 형태·내용도 다양하다. 대부분의 계약이 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어떤 경우는 편법적인 행위를 계약의 내용으로 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법 규정은 크게 단속규정과 효력규정(또는 강행규정이라고도 한다)으로 나뉜다. 둘 다 위반했을 때 행위자에게 제재가 가해진다는 점은 같지만 그 이면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단속규정을 위반했더라도 행위자 사이의 약정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닌 반면 효력규정을 위반했을 때는 행위 자체가 원천적으로 무효가 된다는 점이다. 이미 당사자 사이에 주고받은 금품을 사후에 정리할 때도 효력규정인지 단속규정인지에 따라 이해가 크게 엇갈릴 수 있다.

그렇다면 자본시장법이 규정하는 등록절차를 밟지 않은 이에게 돈을 맡겨 투자하도록 한 행위는 단속규정과 효력규정 중 어디에 저촉된 것일까. 투자일임업 등록을 받지 않은 이에게 투자를 맡겼다가 손해를 입자 최초의 일임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한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2019년 6월13일 선고, 2018다258562)을 소개한다.

A씨는 2012년 2월부터 B씨에게서 돈을 받아 B씨 명의로 국내 증권사 2곳과 선물사 1곳에 총 5개 계좌를 개설하고 투자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의 50%를 B씨에게 주기로 하는 약정을 맺었다. 처음 1년 7개월 동안에는 24억6500여만원의 이익이 발생해 A씨와 B씨는 각각 12억3300만원 가량을 나눠 가졌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발생했다. B씨 명의의 5개 계좌에서 발생한 손실은 9억5000만원에 달했다. A씨는 B씨에게 손실보전 명목으로 미화 9만달러를 지급했고 B씨 계좌에 남아있던 나머지 투자금을 모두 인출해 갔다. 이에 B씨는 A씨를 상대로 4억1000만원 상당의 약정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B씨는 "A씨는 자본시장법에 따른 금융투자업 등록을 하지 않은 자"라며 "A씨와 체결한 일임매매 및 손익 분배 계약은 미등록 영업행위를 금지하는 자본시장법 규정에 위배돼 무효"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A씨와 체결한 일임매매 계약은 강행규정에 위배돼 원천적으로 무효이니 자신이 투자한 금액을 모두 돌려받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자본시장법 제17조는 "누구든지 이 법에 따른 금융투자업 등록·변경등록을 하지 않고서는 투자자문업이나 투자일임업을 영위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심에서는 A씨가 B씨에게 1억6600만원 가량만 돌려주면 된다고 봤다. 개개 약정을 확인한 결과 일부 계좌에서는 투자원금 전체를, 나머지 계좌에서는 손익 분배약정에 따라 50%의 잔액을 A씨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투자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한 B씨는 물론이고 원심에서 일부패소한 A씨도 불복해 3심까지 이 사건을 가져갔다.

대법원에서도 B씨는 최초의 일임계약이 무효였으니 자신이 투자한 금액 전부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이같은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사법상 계약이나 법률행위가 일정 행위를 금지하는 구체적 법규정에 위반해서 행해졌을 때 그 행위가 무효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법 규정을 넓은 의미에서 해석해야 한다"며 "법률효과에 대한 명문의 규정이 있으면 그에 따르고, 그같은 규정이 없으면 규정의 의미에 비춰 법률행위의 무효 또는 효력제한이 요구되는지를 검토해서 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 "자본시장법상 미등록 영업행위 금지규정은 고객인 투자자를 보호하고 금융투자업을 건전하게 육성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반해 체결한 투자일임계약 자체가 그 사법상 효력까지 부인해야 할 정도로 현저히 반사회성, 반도덕성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없다"며 "이에 위반한 행위를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할 경우 거래 상대방과의 사이에 법적 안정성이 심하게 훼손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된다. 이 규정은 강행규정이 아니라 단속규정이라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대법원은 A가 B씨에게 물어줘야 할 외화금액을 원화로 환산할 때 기준시점이 잘못됐다는 지엽적 이유를 들어 A씨의 상고이유 일부를 받아들이고 원심을 파기환송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건은 현재 원심법원에 이제 막 환송돼 심리를 기다리고 있다.

◇관련규정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7조(미등록 영업행위의 금지)
누구든지 이 법에 따른 금융투자업등록(변경등록을 포함한다)을 하지 아니하고는 투자자문업 또는 투자일임업을 영위하여서는 아니 된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98조의2(성과보수의 제한)
① 투자자문업자 또는 투자일임업자는 투자자문과 관련한 투자결과 또는 투자일임재산의 운용실적과 연동된 성과보수를 받아서는 아니 된다. 다만, 투자자 보호 및 건전한 거래질서를 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성과보수를 받을 수 있다.
② 투자자문업자 또는 투자일임업자가 제1항 단서에 따라 성과보수를 받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 성과보수의 산정방식,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해당 투자자문 또는 투자일임의 계약서류에 기재하여야 한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