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일반

[친절한판례씨] 회사 임원은 아무때나 퇴직금 중간정산 가능할까

대법 "정관이나 주총 거치지 않고 신설한 '퇴직금 중간정산', 허용 안돼"

황국상 기자 2019.07.23 13:30

이사회와 경영진, 주주총회의 관계를 국가에 비유하면 국회와 정부, 국민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사회와 경영진, 대주주가 사실상 구분돼 있지 않은 우리 기업의 현실상 이사회가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주 전체의 이익과 상충되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상법은 회사와 임원으로 하여금 일정 의무를 반드시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회사 임원 개인의 잘못된 행위가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상법 규정의 상당 부분이 강행규정이다.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규정이라는 얘기다.

주주총회의 승인 없이 이사회가 임원으로 하여금 퇴직금을 중간정산해서 받아갈 수 있도록 한 기업이 있었다. 이 기업이 해당 임원에게 문제가 된 퇴직금을 '부당이득'으로 환수할 수 있는지를 다룬 대법원 판례(2017다17436, 2019년 7월4일 선고)를 소개한다.

농수산물 도매·수탁판매 등의 영업을 하는 A사는 2010년 3월 주총 결의를 통해 정관을 개정하고 임원들이 받아갈 수 있는 퇴직금을 종전 대비 2배로 상향시켰다. 종전에는 퇴직 당시 월급(연간 총 보수의 평균 월액)에 근속연수만큼만 곱한 금액이 퇴직금이었는데 이를 대폭 증액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사회가 같은 해 4월 별도의 임원퇴직급여 규정을 제정하면서 불거졌다. 이사회가 제정한 이 규정에는 임원의 신청에 의해 퇴직금을 중간정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있었다. 이 내용은 A사의 정관에도 포함돼 있지 않았고 A사 주총 역시 이같은 내용까지를 의결한 것은 아니었다.

B씨는 A사의 임원으로서 한 때 대표이사를 지내기도 했던 이였다. B씨는 2011년 4월 퇴직금 중간정산 명목으로 1억3200여만원을 받아갔다. 이에 A사는 2015년 B씨를 상대로 "퇴직금은 퇴직 시에 지급하는 보수로서 퇴직 전에 중간정산을 하려면 법령이나 정관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그러한 근거 없이 임원퇴직급여 규정에 따라 중간정산을 한 것은 무효"라고 해당 퇴직금이 부당이득이니 이를 반환하라고 소송을 냈다.

원심은 A사의 손을 들어줬다. B씨가 A사에게 중간정산받은 퇴직금을 되돌려줘야 한다는 얘기다. 원심 재판부는 "이사의 퇴직금 청구권은 이사가 퇴직할 때 비로소 발생한다"며 "그럼에도 이사가 퇴직금을 중간정산 방식으로 미리 지급받는다면 이는 회사의 자산이 유출되는 것을 의미하고 회사와 주주, 채권자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주총은 정관변경 절차를 통해 이사의 퇴직금 등을 통제할 수 있는데 이사의 퇴직금 중간정산을 인정하게 되면 이같은 통제가 불가능해진다"며 "A사의 정관이나 주총에서 이사의 퇴직금 중간정산에 관한 규정을 두거나 결의를 했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음으로 B씨는 퇴직금 중간정산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대법원에서도 이같은 판단이 유지됐다. 대법원은 "상법에 따르면 주식회사 이사의 보수는 정관에 그 액수를 정하지 않은 때는 주주총회의 결의로 이를 정한다고 하고 있다"며 "이는 이사가 자신의 보수와 관련해 개인적 이익을 도모하는 폐해를 방지해 주주, 회사 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강행규정"이라고 했다.

이어 "이사의 퇴직금은 상법에 규정된 보수에 포함되고 퇴직금을 미리 정산해 받는 중간정산금도 퇴직금과 성격이 동일하다"며 "퇴직금 중간정산에 관한 주주총회의 결의가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는 한 이사는 퇴직금 중간정산금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A사는 당초 B씨를 상대로 6억3300여만원의 반환을 청구했으나 이 사건에서 다뤄진 퇴직금 중간정산금에 해당하는 1억3200여만원에 대해서만 최종 승소했다. 나머지 약 4억여원은 A사가 주총 등을 통해 임원 보수한도액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B씨가 성과상여금 및 특별상여금 명목으로 받아간 금액이었다. A사는 B씨가 받아간 이같은 상여금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B씨가 받아간 상여금이 '합리적 비례관계가 결여된 보수', 즉 업무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보수라는 A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련규정
상법 제388조(이사의 보수)
이사의 보수는 정관에 그 액을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주주총회의 결의로 이를 정한다.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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