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리나라 테러피해자는 어떻게 보호받을까

김학석 2022.10.12 06:00
지난달 8~9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대테러센터(UNCCT)가 주최한 행사가 열렸다. 테러피해자를 어떻게 지원하고 보호하느냐를 논의하기 위한 국제회의였다. 어떤 경우에 테러피해자로 인정하고 그들을 어떻게 도울 것이며 피해자들을 효과적으로 추모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얘기가 오갔다.

테러 청정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국내에서는 이런 논의가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국제 사회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우리의 생각과 차이가 있다. 1983년 미얀마 랭군에서 우리 고위급 정부 인사를 상대로 벌어진 아웅산폭파사건과 1987년 대한항공 KAL 858기 폭파사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러사건으로 꼽힌다. 2010년 천안함 사건도 국제사회에서는 테러로 규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태평양 건너편에서 진행된 이 행사에 우리가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

필자는 이 행사의 첫째 세션인 '인정과 추모'의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 세션에서 말하는 '인정'이란 어떤 경우에 국가나 법률로부터 테러피해자로 인정받아 법률이 규정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느냐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 제정된 테러방지법에 따라 한국인이 외국에서 당한 테러피해를 당하면 정부가 피해자에 대해 일정한 권리를 보장하고 피해 보상을 한다.

그동안 테러피해자로 인정된 경우를 보면 2016년 영국 런던에서 IS(이슬람국가) 대원을 자칭한 테러리스트가 인도로 차량을 돌진한 테러로 한국인 1명이 뇌를 다쳐 4개월 정도 입원했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한국범죄피해자지원중앙센터가 런던피해자지원센터와 연결해 치료비를 지급했고 국가 차원에서도 지원하면서 우리나라 테러방지법상 최초 지원 사례로 기록됐다.

반대로 법적인 테러피해자로 인정되지 않았던 사례로는 2020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슈퍼마켓에 가던 한국인 유학생이 칼에 목이 찔려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다. 다분히 인종차별 테러로 볼 수 있었지만 당시 몬트리올 경찰은 단순 상해 사건으로 송치했다. 이 피해자는 한국에서도 테러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테러피해자지원연합이 특별 결의를 통해 이 사건을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테러로 판단하고 위로금을 지급했다는 사실이다. 민간단체가 외국에서 발생한 한국인 피해자를 지원한 첫 사례였다. 국가 지원 체계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보완이라고 한다면 민간 피해자지원단체가 필요한 이유로 꼽을 사례라 하겠다.

유엔 행사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테러피해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국제사회의 방식이었다. 미국 정부는 911 테러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무역센터 빌딩 자리에 거대한 추모공원을 만들었다. 아웅산 테러 당시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추모비를 31년이 지난 2014년에야 건립한 우리와 차이가 크다.

필자가 지난달 9일 저녁 911 테러피해자 단체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했을 때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미국 국토안보부장관이 현장을 찾아 당시 테러피해자들을 일일이 위로했다. 이 행사는 골드만삭드 등 미국 주요 기업도 후원했다.

테러피해자를 위한 추모비 건립이나 그들을 기억하는 행사는 살아남은 테러피해자들을 위해 사회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도 테러청정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잊어진 테러피해자들을 찾아 위로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테러에 대한 대비의 첫 걸음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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