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오열…죄는 가족에게도 남는다[김지은의 법정블루스]

김지은 2023.02.08 10:00
서울중앙지법 법정 복도. /사진=김지은 기자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법정 복도에 중년 여성의 울음 소리가 퍼졌다. 만취 상태로 경찰관을 폭행해 기소된 60대 남편의 아내가 터트린 눈물이었다.

이날 공판의 선고 결과는 벌금 300만원. 피고인이 피해경찰과 합의했고 스스로 범행을 인정한 점이 참작됐다. 재판 내내 두 손을 모으고 바닥만 쳐다보던 남편은 구속을 면하자 두 손을 불끈 쥐면서 법정을 나섰지만 5분이 넘게 이어진 아내의 눈물 앞에서 다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내의 오열에서 사건 이후 이어졌을 불안과 초조, 원망, 안도가 뒤섞인 복잡한 심경이 엿보였다. 남편은 "미안하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법이 무서운 이유는 누군가의 인신을 구속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죄를 짓고 법정에 선 이들은 가족에게 잘못을 공개하고 참회와 자책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가족이 또 다른 연대 책임을 무는 것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같은 날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은 60대 남성 2명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해외 방산업체에서 근무하면서 군 관련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군사 기밀을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판사는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법정에 들어서기 전까지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자유로운 신분이었던 이들은 한순간에 수감 생활을 하게 됐다.

판사가 마지막으로 재판 결과를 알리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묻자 한 사람은 눈을 질끈 감으며 "아들에게 알려달라"고 답했다. 다른 사람은 한참 머뭇거리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동생이요"라고 말했다. 뉘우침과 별도로 착찹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가해자 가족은 연대 책임자와 또 다른 피해자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선다. 가족주의 성향이 센 국내에서는 가해자 가족에게도 암묵적인 공범의 탈을 씌워 숨죽여 살 것을 압박하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어떤 면에선 이들 역시 범죄자를 가족으로 둔 피해자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법정에 들어가보면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후 변론에서 가족 이야기를 꺼내며 선처를 호소하는 피고인이 적잖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생후 8개월 된 자식이 있습니다." "부양해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선처를."

부양가족은 양형 결정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요소다. 피고인의 구금이 가족에게 과도한 곤경을 주진 않는지 재판부가 고려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존재는 사회적 유대를 토대로 피고인이 재범하지 않을 가능성으로도 받아들여진다.

지난주 가족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피고인의 말을 듣던 한 재판관은 이런 말을 남겼다. "가족을 그렇게 생각했으면 진작에 그런 일도 하지 말았어야죠.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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