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립밤'에 쏠린 눈…청문회 호출 전, '로펌' 먼저 찾는 이유

[MT리포트]회장님 움직이는 변호사들(上)

심재현, 박다영 2023.04.20 08:27



회장님의 그 립밤도 '컨설팅'이었다…국회 가는 기업들 "로펌 먼저"


①법원 울타리를 넘어 국회로…로펌의 영역 확장


"기업 회장들이 국회에 불려갈 때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로펌입니다. 의원실 성향 파악이나 질의서 입수, 현안 자문은 물론 답변 태도와 복장 조언까지 로펌에서 맞춤형 종합컨설팅을 제공하거든요." (10대 그룹 임원 A씨)

국회의 기업인 호출이 예삿일이 되면서 기업이 로펌을 찾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규제 완화 기대감이 커지면서 새로운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로펌의 입법 컨설팅도 봇물을 이룬다. 로펌의 영역 확장이 한창이다.

로펌의 입법컨설팅은 국정감사나 청문회 같은 특정 시기에만 수요가 있는 단순 대관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예전에는 기업 규제가 만들어지고 문제가 발생해 법정에서 해결해야 하거나 국회에 경영진이 불려갈 때 로펌이 나섰지만 근래에는 입법 단계에서부터 로펌이 국회와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 사이에서 상시적인 가교 역할을 한다.

새로운 법규와 규제 움직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기업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방향을 찾아주는 조타수 역할을 하는 게 요즘 로펌 입법컨설팅의 핵심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법조문 한 글자에도 수천억원의 비용이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희 법무법인 바른 입법컨설팅팀장(대표변호사)는 "규제를 만들 때부터 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대응방안을 사전에 준비, 대처하려는 기업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기업이 직접 정치권을 상대하기 껄끄러워진 상황도 로펌의 가교 역할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의원실 한 보좌관은 "최근 건설사나 제조업체의 자문을 맡은 로펌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의견을 많이 낸다"며 "국회에서도 로펌이 중간에 끼면 청탁 등의 시비에 휘말릴 걱정을 덜기 때문에 업계 의견을 청취할 때 로펌이 중재하는 걸 선호한다"고 말했다.

2016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제1차 청문회'에 대기업 총수들이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뉴스1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눈도장을 찍으려는 국회의원들의 기업인 호출이 올 하반기 봇물을 이룰 것으로 예상한다. 로펌을 찾는 기업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재계 한 인사는 "6~7년 전 국회 청문회에서 화제가 됐던 한 대기업 회장의 립밤도 사전에 철저하게 컨설팅을 받은 준비물이었다"며 "당시 시중 립밤을 전수조사해 문제가 되지 않을 만한 브랜드와 가격대의 제품을 추천해 준비하면서 그나마 불필요한 구설을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회 출신 로펌 관계자는 "국민적인 관심이 몰린 현장에서는 사소한 실수로도 일이 틀어질 수 있기 때문에 몸짓 하나 말투 하나까지 미리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말했다.

입법컨설팅 수요가 늘면서 국회의원 보좌관, 입법고시 출신 전문가들의 몸값도 상승세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지난해 조용복 전 국회 사무차장(입법고시 11회)을, 법무법인 바른은 이용준 전 국회 정무위 수석전문위원(입법고시 12회)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에는 국회공무원 출신 1호 변호사 최석림 변호사(사법연수원 30기·입법고시 15회)가 일한다. 법무법인 광장은 3선 의원 출신으로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우윤근 전 의원과 4선 의원 출신으로 국회 정무위원장을 지낸 김정훈 전 의원(사법연수원 21기)을 영입했다.



"그냥 대관은 옛말"…규제가 키운 '로펌 특수'


②신사업 법안에 업계 입장 반영…무리한 규제도 개선

대형 로펌들이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한 입법 컨설팅을 강화하는 배경에는 법률과 규제 리스크를 줄이려는 기업의 수요가 있다. 신산업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기 전에 업계의 입장을 법안에 반영하거나 무리한 규제를 개선하려는 기업들이 줄지어 로펌을 찾는다는 얘기다. 규제가 로펌의 새로운 시장을 키우는 셈이다.

법무법인 화우의 GRC센터장(대정부 컨설팅 센터장)을 맡고 있는 홍정석 변호사(46·변호사시험 1회)는 "기업이 법을 바라보는 관점이 확연하게 달라졌다"며 "예전에는 기업활동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지를 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입법 과정에 개별 업체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근 산업계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 집단소송법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이미 입법됐다가 개정·보완 논의가 이뤄지고 있거나 입법 논의가 한창인 법안이 대표적이다. 하나 같이 기업 경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 업종별 협회는 물론이고 개별 기업에서도 로펌을 통한 입법자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은 지난해 시공사로 다수의 건설사업에 참여하는 회사의 자산총액을 산정할 때 특정 사업만을 위해 단기간 설립되는 PFV(프로젝트금융투자사) 등 명목상 회사의 자산총액이 합산, 과대평가돼 시공사가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과도한 규제를 받는 사례를 시정하기 위한 입법컨설팅에서 주목할만한 결과를 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앰부시 마케팅 금지법 통과를 자문한 것도 로펌 입법컨설팅의 주요 사례로 거론된다. 앰부시 마케팅은 공식 후원사가 아닌데도 후원사인 척 무임승차하는 행위를 뜻한다. 2002년 월드컵 당시 공식후원사였던 KT가 앰부시 마케팅으로 피해를 봤다.

환경·노동·산업안전 규제처럼 기업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입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핀테크 산업이나 헬스케어, 친환경 등 신산업에서 정부 지원을 골자로 하는 정책입법도 기업들의 관심사다. 최근에는 법률과 시행령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법률뿐 아니라 대통령령·총리령·부령·조례·규칙 등에 대한 대응도 중요해지는 추세다.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진=뉴스1
법조계 한 인사는 "2011년 전후로 정부가 정보화촉진기본법을 폐지하고 국가정보화기본법을 만들면서 포탈업체 다음(현 카카오)이 법인세 감면 대상에서 제외될 뻔했다가 뒤늦게 세금을 감면받은 적이 있다"며 "당시 법무법인 광장의 입법컨설팅팀이 다음의 의뢰를 받아 시행령 개정안을 만들어 정부에 건의하면서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규제에 막혀 신기술이 사장되지 않도록 새로운 입법을 설득하는 것도 로펌 입법컨설팅팀의 역할이다.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규제 문턱이 낮아질 조짐을 보이는 원격의료와 바이오 산업 지원 입법 분야에서 자문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원혁 대륙아주 변호사는 "신산업에 대해 규제를 만들 때 이전에 없던 규제가 생기기 때문에 경영활동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며 "기존 법안의 개정안을 마련할 때는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법안에 대해 개별기업이 규제 대상일 경우 영향을 줄이도록, 기업활동을 지원하는 법안에 대해서는 개별기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논리를 짠다"고 전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일단 법을 만들고 나면 고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며 "로펌에서 입법 과정에 적극적으로 자문하면 뒤늦게 법을 고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사업 지연에 따른 손실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감사나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인들이 1~2개월 전부터 로펌을 통해 예행연습을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로펌마다 예상질문을 뽑아 답변을 준비하고 실제 질문지를 확보해 제공하는 몫으로 수천만원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홍정석 변호사는 "국감에서 기업인의 국감 증인 출석, 자료 제출 요청이 많은데 영업비밀이나 핵심기술이라 제출하면 안 될 자료일 경우 이에 대한 소명을 돕는 등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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