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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당리당략 볼모 잡힌 사법부…"대법원장 공석 피해는 국민만"
[MT리포트-대법원장 잔혹사, 사법부가 멈췄다]②
심재현, 정경훈
2023.09.25 05:20

"당리당략의 먹잇감으로 사법부를 이용한 나쁜 선례."
24일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만료로 사법부 수장 공석 사태가 30년만에 현실화하면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을 위한 국회 본회의 개최일조차 확정하지 못한 정치권이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상대 진영의 인사는 일단 트집 잡고 보는 '낙마정치'와 이에 따른 사법 공백이 결국은 국민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특히 국회 과반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대정부 투쟁 수단으로 사법부를 볼모로 삼는 행태를 두고 대의민주주의 원리를 왜곡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민주당이 의도적이든 미필적이든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원내지도부 총사퇴로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을 위해 합의했던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를 무산시킨 것은 국회의 직권남용이자 직권방기라는 것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민생정치의 중요한 부분인데 당장 표결하기는 부담스러우니까 미뤄두자는 것은 책임지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진녕 법무법인 씨케이 대표변호사도 "입법부가 삼권분립의 한 축이자 헌법기관인 사법부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라며 "국회에 사법 수장 임명동의권을 준 것은 선출직 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정확히 반영하라는 것인데 표결조차 미루는 것은 민의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명동의안 표결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면서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에게 '문제 판사 딱지'를 붙여 몰아붙인 야당의 태도도 다시 도마에 오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재산문제와 몇몇 판결의 성인지 감수성 등을 지적했지만 국민의 공감을 얼마나 얻었는지 의문"이라며 "기본적으로 직무역량이 있고 도덕적 측면에서 중대한 문제가 없다면 정부와 사법부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동의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직무자질이나 도덕성 검증보다는 재산의혹, 대통령과의 친분 여부 등을 부각되면서 정작 재판 지연 등 사법 현안 해결을 요구하는 민심이 왜곡됐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법원 수장 자리를 빈자리로 방치한 책임을 국회뿐 아니라 정부에 함께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후보자를 물고 늘어진 민주당 등 야당과 더불어 헌법기관 수장의 임명동의안 처리에 안이하게 대응한 정부와 여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정국의 해법은 늘 정부와 여당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좀더 치밀하게 대법원장 임명동의 준비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로 기우는 시나리오도 배제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대법원장 임명은 국회의 동의가 필수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정국과 맞물려 여야 정치권의 해법 모색이 표류할 경우 사법 공백 사태가 연말연초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경우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수행하는 안철상 선임 대법관을 포함해 민유숙 대법관 등 내년 1월 퇴임하는 대법관의 후임 후보자 제청 등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내년 초 진행될 법원 정기인사 역시 안갯속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국회가 사법을 볼모로 주도권 싸움을 벌이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일 수밖에 없다. 대법원에서는 매년 5만건 가까운 사건을 처리한다. 지난해 대법관 1명이 처리한 사건은 4036건꼴이었다. 2010년 1인당 처리사건이 3000건을 넘어선 지 12년만에 1000건이 더 늘었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그만큼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얘기다. 적잖은 경우가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이 큰 사건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사법 공백 기간이 길어질수록 피해는 국민들이, 그 중에서도 마지막 보루로 법원을 찾은 소수·약자들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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