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재주 넘는 곰' 탈피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내년 시행 앞둔 사우디 지역본부(RHQ) 프로그램

신동찬 2023.12.04 05:00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사진=뉴스1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을 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대외 개방과 외국인 투자유치 드라이브가 거침없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중동 정세가 다시 혼란에 빠진 와중에도 지난달 28일(현지시각) 우리나라 부산과 이탈리아 로마를 꺾고 2030년 엑스포를 유치한 행보에서도 이런 행보가 선명히 드러났다. 사막 한복판에 건설될 미래 도시 사업 '네옴시티 프로젝트'는 이미 세계적인 화제가 됐고 러시아의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세계 공급망이 불안정해진 탓에 사우디가 전통적으로 강점을 지닌 석유 사업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졌다. '그의 손을 거치면 모든 일이 이뤄진다'는 의미로 붙은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다.

부산의 좌절은 아쉽지만 우리 기업은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중동 붐'을 다시금 기대하며 중동 교역과 투자에 열을 올리는 추세다. 하지만 빈 살만 왕세자는 자신의 야심찬 사우디 근대화 프로젝트에 외국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면서도 그들이 사우디 경제에 확실히 기여하도록 현지 제도를 재편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2021년 발표돼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사우디 지역본부(RHQ·Regional Headquarter) 프로그램이다.

사우디 지역본부 프로그램이란 사우디의 주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자 하는 외국 기업이 반드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지역본부를 사우디에 두고 당국으로부터 'RHQ 라이센스(인증)'를 받으라는 정부 정책이다. 이 지역본부는 최소 2곳 이상의 다른 국가에 위치한 지사나 자회사를 거느리면서 지사·지회사 관리 외에 추가적인 업무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지역본부에는 임직원을 고용할 의무도 부과된다.

외국인 주재원과 그 가족들에게 사우디는 생활하기 쉽지 않은 지역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중동의 대형 프로젝트 중 상당수가 사우디에서 발주되는데도 불구하고 다국적 기업에선 생활 여건이 외국인 친화적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아부다비, 카타르 도하 등에 중동 지역본부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다국적 기업들이 사우디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해 돈을 벌어가면서도 사우디는 주재원이나 가족들의 삶의 터전이 되지 못하고 다국적 기업의 중동 본부를 유치할 때 생기는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불만이 제기돼 왔다. 속된 말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상황을 자각한 것이다.

사우디 정부는 내년 1월 사우디 지역본부 프로그램이 시행되면 자국에 지역본부를 두지 않은 기업을 정부기관과 사업·조달 계약에서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공공사업 입찰에서도 제외하기로 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예외는 △계약금액이 100만 사우디리얄(한화 3억4500만여원) 미만인 경우 △입찰에서 차순위 응찰 기업보다 25% 저렴한 응찰가를 제시한 경우 △지역본부 미설립 기업만 계약을 수행할 수 있는 경우 △공공안전·보안·보건 등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응급상황인 경우 정도다. 사우디 진출을 고려하는 우리 기업들이 지역본부 프로그램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할 시점이다.

신동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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