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도 소멸시효가 있다…안 들킨 상속세, 버티면 안 내도 될까?
화우의 웰스매니지먼트팀 전문가들이 말해주는 '상속·증여의 기술'
허시원
2024.05.21 14:00

시간이 지났다고 권리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이 부당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도 이런 제도를 두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기간이 오래 지속되면 당사자들이 불안정한 법적 상태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법은 상황에 따라 소멸시효 기간을 다르게 두고 있다. 일반적인 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고, 상거래로 인해 발생한 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이다. 소멸시효가 더 짧은 경우도 있다. 보험금 청구권에 대해서는 3년, 숙박료·음식료·보험료 등에 대해서는 소멸시효 1년이 적용된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1년 뒤에 돌려받기로 한 경우를 살펴보자. 돈을 갚기로 한 날, 즉 빌려준 날 이후 1년이 지난 때로부터 10년 동안 돈을 갚으라고 독촉한 적 없으면 채권 자체가 없어져서 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다. 권리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더는 상환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금은 국가가 납세자에 대해 갖는 채권 성격을 갖고 있어 소멸시효와 비슷한 제도가 있다. 관련 법령에는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기간이라는 의미로 '부과제척기간'을 두고 있다. 국가는 부과제척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더 이상 국민에게 세금을 내라고 요구할 수 없다. 일반적인 부과제척기간은 5년(국제거래는 7년)이다. 납세자가 법정 신고 기한까지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7년, 사기·부정행위로 세금을 포탈하거나 환급·공제받은 경우에는 10년(국제거래는 15년)의 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된다.
상속세와 증여세에 대해서는 더 긴 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된다. 기본적인 제척기간은 10년. △납세자가 부정행위로 상속·증여세를 포탈하거나 환급·공제받은 경우 △상속·증여세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신고서는 제출했지만 거짓신고 또는 누락신고를 한 경우에는 15년의 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된다. 다른 세금에 비해서 세원을 포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다른 세금보다 부과제척기간을 더 길게 정해 세금을 걷지 못하는 걸 방지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산을 물려준 후 신고하지 않거나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등 어떤 경우에도 15년이 지나면 세금을 안 내도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우리 세법은 예외적으로 납세자가 부정행위로 상속세나 증여세를 피하는 경우에는 국가가 상속 또는 증여가 있음을 안 날부터 1년 이내, 즉 세무서에 의해 그 사실이 밝혀진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상속세 및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특례 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되는 경우는 △다른 사람 명의로 된 피상속인 또는 증여자 재산을 물려준 경우 △국외에 있는 재산을 물려준 경우 △유가증권, 서화(書畵), 골동품 등을 물려준 경우 △수증자 명의로 된 증여자의 금융자산을 수증자가 보유하고 있거나 사용한 경우 △다른 사람 명의로 명의신탁한 재산에 대해 증여한 것으로 보는 경우(명의신탁 증여의제) △상속인이나 수증자가 가상자산사업자(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하지 않고 가상자산을 물려받은 경우 등이 있다.
다만 특례 부과제척기간은 상속인이나 증여자 및 수증자가 사망한 경우와 포탈세액 산출의 기준이 되는 재산가액이 50억원 이하인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다른 세금보다 긴 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되고 특례 부과제척기간까지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속세나 증여세를 신고하지 않고도 발각이 안 돼 세금을 안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위법한 방법으로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오랜 기간 마음을 졸이면서 사는 것보다는 법에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세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