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이어폰 꽂고 있죠"…녹음파일에 허덕이는 檢[조준영의 검찰聽]
조준영
2024.11.04 06:00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검사도, 수사관도 하루종일 이어폰을 꽂고 있습니다".
수도권지검의 한 부장검사가 휴대폰 등 전자기기 포렌식으로 확보한 녹음파일 분석을 두고 꺼낸 하소연이다. 혐의와 관계있는 녹음파일과 혐의와 관계없는 파일을 분류하는 데만도 상당한 품이 든다고 한다. 이 부장검사는 "일단은 하나하나 다 들어봐야 하는데 수사보안 때문에 다른 인력을 지원받기도 어려워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휴대폰 통화녹음이 보편화하면서 검찰이 포렌식 수사로 애를 먹고 있다. 수사에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된 반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져나오는 녹음파일 때문에 수사에 드는 노력과 시간이 곱절로 커진 탓이다. 휴대폰을 바꿔도 새 휴대폰에 자료를 쉽게 옮겨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수년에 걸친 방대한 자료가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더불어민주당 돈봉투 사건의 발단이 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핸드폰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6년부터 7년 동안 휴대폰에 자동저장된 3만여개의 통화녹취에서 돈봉투 살포 관련 증거가 포착돼 검찰 수사가 이뤄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을 제보한 강혜경씨가 제출한 4000여개의 통화녹음도 비슷한 사례다. 검찰은 명태균씨 등 관련자 압수수색에서도 녹음파일 수만개를 확보해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수사팀이 통화분석에만 달라붙어도 최소 1~2개월이 걸릴 수밖에 없는 양이다.
수사팀은 녹음을 듣다가 주요 증거가 발견될 경우 해당 부분을 검찰청 소속 속기사에게 넘겨 문서로 정리한다. 대용량 파일의 경우 처음부터 전체 파일을 속기사에게 맡긴 뒤 녹취록을 받아 읽고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기도 한다. 녹음파일 수가 많아질수록 수사가 더딜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엔 보조수단을 활용해 이런 업무부담을 줄이려는 시도도 나온다. 지난달 19일 개통한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킥스)에 'AI(인공지능) 음성인식 활용 조서 작성 기능'이 탑재되면서 적잖은 검사들이 녹취록 분석에 이 기능을 활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이 기능은 피의자나 참고인 신문과정에서 조사자와 피조사자 음성 내용을 구분해 문자로 자동 전환하기 위해 개발됐지만 결국 음성을 문자로 변환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일부 수사팀이 녹취록을 뽑을 때도 이 기술을 활용한다고 한다. 보통 1시간 분량 녹음파일을 10분 안에 인식률 90~95% 수준의 텍스트 파일로 변환할 수 있기 때문에 좀더 신속하게 수사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아직은 정확도가 높지 않아 '쓰는 사람만 쓰는' 기술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비수도권의 한 차장검사는 "사투리를 쓰는 피조사자가 많은데 변환을 시켜놓으면 엉뚱한 말이 적혀 있어서 다시 사람이 들어야 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부장검사는 "아무리 음성을 문자로 바로 바꿔준다고 해도 글로 읽었을 때와 음성으로 들었을 때 차이가 크기 때문에 뉘앙스 등을 확인하기 위해선 다 들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검 관계자는 "민간 AI 시스템은 아직 전문용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피의자'가 '피자'로 바뀌어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킥스'는 법률이나 조사용어 등을 좀더 인식할 수 있도록 학습시켰고 추가 학습을 통해 인식률을 더 높이려고 한다"면서도 "당장은 수사 보조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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