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개발한 반도체 기술, 중국 수출 시도…유출땐 연간 1조 손해

박다영 2025.01.19 13:24
사건개요도/제공=수원지방검찰청

삼성전자가 30여년에 걸쳐 개발한 반도체 기술을 중국기업에 넘기려는 시도가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검찰은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가 해당 기술을 개발하는데 2188억원을 투입했고 해당 기술이 유출돼 국내 업체의 반도체 판매량이 1% 줄어들면 연간 1조원 상당의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수원지방검찰청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박경택)는 국가핵심기술을 도용해 제작한 반도체 세정장비를 중국기업에 수출하려 한 삼성전자 출신 중국계 회사 운영자 A씨와 설계팀장 B씨를 지난 17일 구속 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회사 직원 9명과 관련 법인 3곳은 불구속 기소했다. 국내에서 보관·제작 중이던 120억원 상당 세정장비 3대를 압수하고 해당 업체의 국내 자산 100억원 상당을 추징보전하는 등 범죄수익 환수 조치도 했다.

A씨는 삼성전자 출신으로 2018년 고연봉을 제시하며 반도체 업계에 근무한 엔지니어들을 순차적으로 영입해 반도체 세정장비 개발 업체를 설립했다. 세정장비는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웨이퍼(반도체 원재료인 얇은 원판) 표면의 머리카락 굵기 1만분의 1 크기 오염물을 정밀하게 제거하는데 반도체 제조공정의 핵심으로 꼽힌다.

A씨는 2021년 중국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와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A씨의 회사가 보유한 모든 인력과 기술을 중국 회사의 국내법인에 양도하는 대가로 78억2000여만원을 받고, 중국 회사를 위한 세정장비를 개발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A씨는 이 중 50%인 39억1000만원을 수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영입된 엔지니어들은 A씨의 지시에 따라 세정장비 챔버부(세정장비 내에 구성된 세정 작업이 실제로 진행되는 부분)와 세정장비를 구동하기 위한 레시피(세부 절차와 방법을 정리한 문서)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기술자료를 수집했고 A씨는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세정장비 개발을 주도했다.

제작된 시제품 2대 중 1대가 중국으로 수출됐고 2대의 양산장비를 제작하던 중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면서 범행이 중단됐다.

피고인들은 중국 업체가 자체적으로 세정장비를 개발했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수사에 대비해 가명을 사용하고 회사는 간판 없이 운영했으며 기술자료를 베끼고 난 후에는 철저히 삭제했고, 수출된 시제품을 우연히 목격한 동종업계 관계자들이 신고하려는 소문을 듣자 단체로 휴대폰을 교체했다.

검찰은 기술유출 사건 수사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지문'을 확인하는 포렌식 기법을 사용해 국내 업체들의 기술이 도용된 사실을 밝혀냈다. 디지털 지문은 사람의 지문처럼 디지털 파일이 갖는 고유의 값이다. 한 글자라도 고치면 해시값이 달라져 문서의 변조 여부 등을 알아내는 데 사용된다.

A씨 등이 부정사용한 기술자료는 세정공정 관련 자료와 세정장비의 설계도면 등 반도체 세정기술과 관련한 것이다. 이 기술들은 각각 산업부에서 '국가핵심기술', '첨단기술'로 지정됐다. 검찰은 기술이 그대로 유출돼 동일한 품질의 설비가 대량생산됐다면 세메스의 기술개발에 투입된 연구개발비용 2188억원에 대한 직접 손해뿐 아니라, 기술경쟁력 저하로 인해 반도체 판매량이 1% 감소할 때마다 연간 1조원 상당의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검찰은 과거 기술유출 범행이 대부분 외국 기업이 고액의 연봉을 내세워 엔지니어들을 스카우트하는 방식이었으나, 이번 사건은 이와 달리 외국기업이 직접 한국에 기술유출 거점업체를 설립·운영해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한 범행이라고 봤다. 이같은 유형은 자녀교육 등 문제로 해외생활을 꺼리는 엔지니어들까지 영입할 수 있고, 설계기술 외에 제작 노하우도 중요한 세정장비 제작 과정에서 노하우가 축적된 국내 협력업체들을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수원지검은 "첨단산업보호 중점 검찰청으로서 국가핵심기술, 첨단기술을 국외로 유출하는 반국가적 범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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