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대리인? 수탁인!

이학렬 2025.03.18 05:20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담벼락에 원형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 사진=뉴스1
헌법재판소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두고서다.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지 3개월 넘게 지났다. 마지막 변론 이후에도 20일이 지났다. 선고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역대 최장의 숙의다.

긴 시간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결정과 설명을 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탄핵심판을 청구한 쪽이나 피청구인 쪽 모두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다시 평온함을 찾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누구나 납득하는 결정의 조건 중 하나는 절차적 흠결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헌법과 법 등에 정해진 절차를 제대로 따라야 한다. 탄핵심판은 형사재판 절차를 준용한다. 하지만 형사재판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많다. 탄핵심판은 공직자 파면 선고일 뿐 누굴 처벌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형법상 내란 우두머리의 처벌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 뿐이다. 헌법에서도 "탄핵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 그러나 이에 의하여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아니한다"(65조4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헌법에 맞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윤 대통령이 의문없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고 그 정도가 대통령직에서 파면할 정도로 중대해야 한다. 여기에 헌법재판관들의 정치적 편견이 들어갈 틈은 없다.

국회의원과 국민(유권자)의 관계에 관한 오랜 논쟁 중 하나는 국회의원이 '대리인'이냐, '수탁인'이냐다. 국회의원이 자신을 뽑아준 국민 의견을 그대로 정책 등에 반영하는 것이 대리인 방식이다. 반면 국민이 나랏일을 가장 잘 할 것 같은 후보자를 꼽지만 선출된 국회의원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수탁인 방식이다.

우리나라 헌법엔 국회의원을 대리인보다는 수탁인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문구가 있다.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46조2항)라는 조항이다. 반면 많은 국민들은 국회의원을 수탁인보다는 대리인으로 보고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22대 국회가 구성된 이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6%가 국회의 국민 대표 방식으로 대리인 방식을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탁인 방식은 14%만 선호했다.

그렇다면 헌법재판관은 대리인일까, 수탁인일까. 헌법재판관은 대통령이 9명 모두를 임명하지만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사람을,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사람을 임명하도록 돼 있다.

국민들은 누가 추천(선출, 지명)했는지를 보고 헌법재판관의 성향을 나눈다.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 탄핵 심판, 정당의 해산심판, 국가기관간 권한쟁의 심판, 헌법소원 심판 등에서 성향에 따라 의견이 다를 것이라고 예단한다. 많은 국민이 국회의원을 대리인으로 보듯이 헌법재판관도 '누군가'의 대리인이라고 보는 셈이다. 헌법재판관들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특히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하면서 헌법재판관이 성향에 따라 인용과 기각 의견이 4대4로 갈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헌법재판관을 대리인과 수탁인 중에서 고른다면 수탁인임이 분명하다. 헌법에 따라서만 판단하라고 강조하기 위해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112조2항)는 조항이 헌법에 있을 정도다. 헌법에서 정치적 활동을 금지한 곳은 헌법재판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뿐이다.

헌법재판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들의 얘기에 귀를 막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대리인이 아닌 이상 굳이 자신을 임명해준 대통령 편을 들어줄 필요는 없다. 자신을 추천해준 국회(특정 정당)나 지명한 대법원 뜻대로 움직일 이유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오직 법리만 따르면 된다. 국민들은 이번에 진정한 수탁인으로서의 헌법재판관을 마주하길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헌재는 지금보다 더 힘들게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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