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해제조항' 밀고 당기기

조우성 변호사(머스트노우) 2016.03.31 09:17


다음의 계약서 초안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여러분도 정답을 한번 맞혀 보시라.


이 계약서 초안은 먼저 갑에게만 일방적인 해제권을 인정하고 있다. 또 계약상 의무에는 중요한 것도 있고 중요하지 않은 것도 있는데 이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단 하나의 의무라도 위반하면 바로 계약 해제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문제다. 아울러 계약상 의무위반에 대해 '시정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바로 해제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잘못됐다.

을에게 불리하게 보이는 계약조항이라고 해도 약관이나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하는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계약서는 유효하게 취급된다.

원래 민법상 '계약의 중대한 의무를 위반하고 이것이 시정되지 않음으로 인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경우'에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다. 그러나 이 계약서 초안은 너무나 쉽게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초안을 어떻게 수정하면 될까?


수정 1안은 갑과 을 모두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모든 의무가 아니라 '중요의무'를 위반했을 때 한해 해제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또 '중요의무 위반'이란 요건(원인)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는 요건(결과)까지 추가했다.


수정 2안은 갑이 '감히 갑과 을을 대등하게 놓고 계약하자고 그래?'라며 반발할 경우를 대비해 원안을 그대로 두되 요건을 강화하는 식으로 수정했다. 초안보다 '단순 의무위반이 아닌 중요의무 위반'이어야 하고 '그로 인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는 두 가지 요건이 추가됐다.


수정 3안은 갑이 원래 계약서 초안을 거의 바꿔주지 않으려 할 경우, 적어도 을에게 시정요구는 해 달라는 점을 추가했다. 을로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계약을 위반했을 수가 있는데 갑이 '지금 계약 위반했으니 일단 시정하세요'라고 요청토록 하고 이를 뒤늦게 알아차린 을이 위반사항을 시정함으로써 계약이 해제되는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정 4안은 을의 입장을 가장 강하게 보호하는 방향으로 수정됐다. 상대방과의 협상과정에서 수정 1~4안을 적절히 제시하면서 계약 수정을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듯 계약 협상 과정에서 을이 어떤 대안을 갖고 임하느냐에 따라 최종 계약문구는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뚜벅이 변호사'·'로케터'로 유명한 조우성 변호사는 머스트노우 대표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거쳐 현재는 기업분쟁연구소(CDRI)를 운영 중이다. 베스트셀러인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의 저자이자 기업 리스크 매니지먼트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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