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뉴스

성폭행·음주사망도…판결 직전 돈내고 반성하는 척하면 99%가 감형

[MT리포트-꼼수 면죄부 된 공탁금]①형사특례 공탁 피해자 3명 중 2명 수령 안 해…법원·검찰 개선 검토

조준영, 심재현 2024.01.08 05:00

#2022년 12월 서울 청담동 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내 초등학생을 숨지게 한 4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11월 항소심 선고를 열흘여 앞두고 법원에 1억5000만원을 기습 공탁(법원에 맡기는 합의금)했다. 피해 아동의 유족이 "오로지 엄벌을 원한다"고 밝혔지만 재판부는 A씨가 1심 선고 직전 공탁한 3억5000만원까지 총 5억원을 공탁한 사실을 고려했다며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5년으로 형량을 감형했다. 검찰의 2심 재판 구형은 징역 20년이었다.

#2022년 수사로 드러난 '자매 그루밍(길들이기) 성폭력 사건'에서도 피고인인 40대 목사 B씨가 피해 자매의 합의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피해자 계좌에 2000만원을 보냈다가 되돌려받자 지난해 10월 1심 판결 직전 이 돈을 법원에 공탁하면서 논란이 됐다. B씨는 2019년부터 2022년 여름까지 20여차례에 걸쳐 저지른 성폭행 및 성추행에 대해 법원에만 반성문과 공탁금을 제출하고 피해 자매에게는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지만 재판부는 검찰 구형량(징역 20년)의 절반도 안 되는 징역 8년을 선고했다.

형사사건에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모르거나 피해자의 동의 없이도 법원에 합의금(공탁금)을 맡길 수 있는 형사특례 공탁제도가 시행 1년을 넘기면서 가해자의 감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당초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강요하는 등 2차 피해의 소지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온 변제공탁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음주운전 사망사고나 성범죄 등에서 엄벌을 원하는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한 채 가해자가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한 '꼼수'로 악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7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형사공탁금 신청건수는 형사특례 공탁제도가 시행된 2022년 12월 1486건 이후 지난해 6월 2369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달 2000건 안팎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까지 신청건수는 총 1만8964건, 액수로는 1151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피해자와 합의 등을 통해 신청된 형사변제 공탁은 총 2112건(422억원)로 1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감형을 위해 피해자 동의 없이 일단 내고 보는 공탁금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지난해 10월까지 형사특례 공탁이 신청되고 1·2심 판결이 나온 사건 988건 가운데 변론이 끝나고 재판부가 판결을 선고하기 전 2주 이내에 '기습 공탁'한 사례가 558건(56.4%)에 달한다. 이 가운데 130건은 선고를 불과 사흘 앞두고 이뤄졌다. 선고 2주 이내에 이뤄진 공탁 558건 중 재판부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 처벌을 감경한 사례는 448건(80.2%)에 이른다. 양형에 제한적으로 고려된 사례도 102건으로 집계된다. 피해자의 엄벌 의사를 반영해 공탁을 감형 요소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건은 8건(1.4%)뿐이다. 사실상 법원에 돈만 맡기면 감형되는 사례가 99%에 달하는 셈이다.

공탁 신청이 폭증한 것과 달리 공탁금을 찾아간 비율은 대폭 줄었다. 지난해 9월까지 형사특례 공탁금 지급건수는 6828건(475억4905만원)으로 신청 대비 36%에 그쳤다. 피해자 3명 중 2명은 찾아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반면 이 기간 형사변제 공탁은 2271건(304억3526억원)이 지급돼 지급률 106%를 기록했다.

신청건수 급증이나 신청시점·유형, 지급건수 등에서 특례 공탁 제도가 애초 의도가 다르게 진지한 반성이나 피해자와의 합의 없는 '기습 공탁', '꼼수 공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대목이다. 법원과 검찰이 제도 개선 검토에 착수한 가운데 국회에서도 관련 개정안이 발의됐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위원은 "반성과 함께 공탁이 이뤄져야지 반성없이 양형에 유리하기 위해 공탁을 악용하면 안 된다"며 "피고인이 공탁을 했어도 밖에서는 범행을 부인하고 2차 가해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재판부가 피해자의 의견을 꼭 듣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