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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주의 PPL] 정치권·법조계, '흙수저' 전성시대

총선과 사시존폐 논란 흙수저 '코스프레'만 난무…서민위한 진짜 법조인 양성제도 고민할 때

유동주 기자 2016.05.11 17:23

2015년 12월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정문 앞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 김종근씨가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며 삭발식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2015년 12월14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회는 '우리는 금수저가 아니다'는 내용이 담긴 스티커를 제작해 학내 카페에서 컵홀더에 붙여 제공했다. 서울대 로스쿨 학생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이 스티커는 서울대 로스쿨생들이 이른바 '금수저'라는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됐다. (서울대 로스쿨 학생회 제공) /사진=뉴스1

바야흐로 '흙수저' 전성시대다. 저성장 환경 속에 취업난까지 겪고 있는 이른바 '삼포세대'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가 수저계급론에 동감하게 하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가 기회의 불균형으로 이어졌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수저계급론은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너도나도 흙수저 코스프레

대중의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권도 지난해부터 '흙수저를 위한 정치'를 유난히 자주 언급했다. 지난 총선에서도 여야 기성정당은 물론이고 '흙수저당'이라는 정당도 등장해 너도나도 흙수저 청년들을 위한다고 나섰다. 후보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흙수저 출신임을 강조하며 한 표를 호소했다. 

변호사 출신의 총선 예비후보가 정당 경선과정에서 지역구 당원들에게 보낼 자신의 성장과정을 담은 출사표를 쓴 것을 먼저 읽어 볼 기회가 있었다. 30대 중반인 그는 자신이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운 성장과정을 거쳐 어렵게 공부해 변호사가 됐다는 내용으로 출사표를 채웠다. 특히 법대에 진학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한 스토리는 총선 출사표라기 보다는 고시합격수기에 가까웠다.

특히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주류인 지역구 당원 입장이라고 가정할 때, 자칭 흙수저인 그의 출사표는 낙제였다. 80년대생인 그 변호사가 겪었다는 '가난'의 실체는 작은 분식집을 하며 평범하게 살았던 집에서 태어나 국립대 법대에 들어가 조교로 일하며 장학금을 받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게 다였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을 겪었던 중장년층 당원이나 지역 유권자들이 보면 헛웃음이 나오게 할 정도로 싱거운 흙수저였다. 이른바 '흙수저 코스프레'다. 

실제 총선에선 흙수저를 자처한 여러 명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가난'이 훈장처럼 된 수저계급론에서 '흙수저'라는 후보가 신고재산이 예상밖으로 많기도 했다. 흙수저를 자처하던 야당 청년비례인 모 후보는 특별한 사회경력이 없는데도 신고재산이 4억원이나 되고 외국 유학까지 갔다 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호되게 비판받기도 했다. 

◇사시는 흙수저…로스쿨은 금수저?

사법시험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둘러싼 흙수저 논란도 마찬가지다. 사시존치 활동을 하던 변호사들이 총선에서 흙수저론을 강조하며 여당에 동반 입당해 출마하기도 했다. 사시존치측에선 '사시는 흙수저, 로스쿨은 금수저'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대중을 상대로 한 홍보전에 쓰고 있다. 현재까진 사시 흙수저론이 힘을 얻고 있다. 고졸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어려운 환경에서 합격한 사시로 성공한 스토리에 대한 향수가 대중에 이해되기 쉽기 때문인듯 하다.

반대로 '금수저'제도라는 세간의 시선에 로스쿨측은 반박하고 있다. 로스쿨측은 현재의 흙수저는 로스쿨 특별전형으로 얼마든지 변호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즉 대중들의 오해가 깊어 로스쿨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 것이다. 즉 사시와 로스쿨제도에 대해 실제와 다르게 알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라는 주장이다.

사시존치 논란은 법조계 뿐 아니라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전체의 관심사다. 어떤 이슈가 해당분야 전문영역을 벗어나 사회전체의 관심을 받으면 '포퓰리즘'의 압박을 받곤 한다. 사시존치 논란도 마찬가지다. 이분법적 흙수저 프레임에 갇혔다.

어떤 제도가 국가대계를 위한 법조인 양성제도인가라는 중요한 문제는 뒷전이고 흙수저를 위한 제도냐 아니냐라는 문제로 단순화 됐다. 최근 로스쿨 변호사들의 단체인 한국법조인협의회(한법협)는 사법연수원을 상대로 차상위계층 등 사회적 배려 대상 비율을 정보공개할 것을 청구했다. 실제 흙수저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사시와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을 정확하게 비교해보자는 것이다.

현재 로스쿨은 경제취약계층 특별전형 입학 등 취약계층비율이 정확한 숫자로 나와 있다. 대체로 5~10%내외다. 그런데 연수원에는 관련자료가 없다. 사시합격 단계나 연수원 생활에 '가난'을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법협측은 연수원출신들의 실제 집안 배경 등 흙수저 비율이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로스쿨이 금수저 학교처럼 비난받는 것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법조인 양성제도…소모적 흙수저론 매몰되면 곤란

사시존폐 논란은 결국 어느 제도가 흙수저 출신이 법조인이 될 가능성을 더 보장하느냐의 싸움처럼 됐다. 로스쿨 입학에서 부모의 직업을 거론했다는 논란도 마찬가지다. 로스쿨은 금수저들이 더 쉽게 입학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시험과 입학과정이 공정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로스쿨이 특별전형에 흙수저들의 입학을 보장했더라도 일반전형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사시존치측 주장처럼 로스쿨에 문제가 심각하다면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신평 경북대 교수 주장처럼 로스쿨로 교수들만 큰 혜택을 보고 있다면 바꿔야 한다. 부당한 일이 계속돼 왔다면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만약 로스쿨이 개혁으로 고치기 힘든 수준이고 사시존치가 유일한 답이라면 그렇게 할 명분과 근거를 찾으면 된다. 더 이상 소모적인 법조계 편가르기와 대국민 선전전은 모두에게 이롭지 않다.

◇평범한 서민위한 법조인 양성제도 고민할 때

로스쿨커뮤니티에선 흙수저 입학문제에 대해 다르게 본다. 로스쿨 초기부터 가난을 증명할 수 있는 차상위계층 이하 '진짜 흙수저'들은 경쟁률도 낮고 장학금이 보장돼 오히려 입학이 쉬웠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사회보장측면에서도 소외받고 있는 차상위계층 바로 위 계층인 '서민층'이다. 

복지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끼어있는 일반 서민 가정 출신이 부담없이 로스쿨에 입학하기 쉽게 하는 방법을 로스쿨과 정부가 고민할 시기다. 평범한 서민들에겐 학자금 대출도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헌법에 명시된 기회의 균등을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서민 자녀들에게도 제대로 맛보게 할 때다. 

법조계와 정치권의 주요 인사들은 사사로운 이익으로 사시존폐를 논해선 안 된다. 동시에 깨어있는 시민의 바른 판단도 절실하다. 흙수저론에 매몰돼 사시존폐 논란 뒤의 속살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 특히 변호사 배출숫자를 줄이려는 법조단체 의도나 독점적 변호사 배출권에 취해 갑질하는 일부 로스쿨 교수들의 잘못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20대 국회에서 사시존폐 논란을 다룰 당선자들도 마찬가지다. 지역구 민원에 힘센 단체 압박에 휘둘리기 보단 제대로 된 법조인 양성제도를 만들겠다는 양심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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