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국상의 法과 시장] 논란의 핵심 '구조조정'…방법론적 원칙훼손 방치 말아야

[the L의 눈]

황국상 기자 2016.05.25 15:34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6일 열린 산업·기업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김창현기자

조선 해운 건설 철강 화학 등 5대 취약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논의가 한창이다. 정부와 국회도 올해 들어 원샷법(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 기촉법(기업구조조정 촉진법) 등의 관련입법 작업에 박차를 가하며 다양한 단계의 구조조정에 대한 입법근거를 마련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글로벌 경기회복 지연으로 인한 수요감소에 이전 시기 공급과잉이 겹치면서 구조조정 환경도 달라졌다는 평가다. 종전의 구조조정은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위기를 벗어나게 하고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조치였던 데 비해 최근의 구조조정은 거시환경 악화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일시적인 구조조정이 아닌 상시적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는 데에도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고통과 후유증이 수반되는 구조조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구조조정이라는 과제가 피할 수 없는 이슈라더라도 원칙없이 진행돼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최근 경제개혁연구소가 발간한 '과연 자율협약은 선제적 구조조정 수단인가 - 산업은행이 채권을 보유한 99개 구조조정 기업 분석결과'(저자 김상조 한성대 교수)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구조조정이 원칙없이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상조 교수는 지난해 8월 하순 기준으로 산업은행이 채권을 보유한 99개 구조조정 기업 관련자료를 분석한 결과 해당 부실기업의 자산규모에 따라 구조조정 방식이 결정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구조조정 방식으로는 법원주도의 법정관리(회생절차)와 채권단 주도의 워크아웃, 자율협약 등이 있는데 '법정관리 > 워크아웃 > 자율협약' 순으로 구조조정의 강도가 약해진다는 평가다.

조사대상 기업 중 법정관리, 워크아웃 대상기업의 수는 각각 43개사씩인 데 비해 자율협약 대상기업의 수는 13개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 13개 자율협약 대상기업은 구조조정 대상기업 전체 총 자산의 48.9%에 육박하는 데다 금융권 총 채권액의 60.5%, 산업은행 총 채권액의 59.4%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조사대상 전체 기업의 평균 자산규모를 1로 볼 때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대상기업의 자산규모가 각각 0.51, 0.64임에 비해 자율협약 기업의 자산규모는 3.64로 나타났다. 자산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강도가 약한 구조조정 방식이 적용되는 혜택을 누린다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김 교수는 "구조조정 개시여부, 채무 재조정, 출자전환, 신규자금제공, 자구노력 등의 구조조정 내용이 아무런 법적 근거없이 채권은행과 채무기업간 협의에 의해 결정되는 자율협약 방식이 대규모 기업에만 적용된다는 사실이 구조조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또 "부실징후가 진행 중인 워크아웃 기업과 아직 부실징후가 드러나지 않았으나 선제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자율협약 기업을 비교할 때 부실징후 요건(부채비율 200% 초과, 이자보상배율 1배 미만)에서 큰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며 "자율협약 방식에 최소한의 법적근거를 마련해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구조조정이 필요한지 여부에서부터 구조조정 대상을 선정하거나 어떤 구조조정 방식이 적용돼야 하는지 등에 이르기까지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구조조정이 그만큼 다수 국민의 고통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멍을 방치한 채 독에 물을 채울 수는 없는 법이다. 당국은 구조조정에 대한 최소한의 방법론적 원칙에 대한 의구심도 해결하지 못한 채 구조조정을 강변하는 것은 효율적 구조조정의 진행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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