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서초]죽은 남자친구가 보낸 문자메시지

⑪대검찰청 과학수사부 '2016 과학수사 국제학술대회'…디지털 자료는 어떻게 증거가 될까

박보희 기자 2016.12.04 00:02

방안은 엉망이었다. 물건들은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있었고, 바닥에는 피가 고여 있었다. 피가 흘러나온 곳은 문이 닫힌 화장실. 화장실 문을 열자 욕조 위로 다리가 보였다.

◇이틀째 연락이 끊긴 남자친구…그에게서 온 문자메시지

이틀째 남자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던 그였다. 연락이 끊기고 이틀째 되던 날 A씨는 남자친구의 아파트를 찾았다. 아파트 관리인에게 사정을 하고 그의 집 문을 열었지만, 이미 그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LA) 경찰서에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 조사 결과 남자친구는 칼에 찔리고 머리에 총상을 입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남자친구가 새벽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A씨가 남자친구의 스마트폰에서 받은 마지막 문자는 경찰의 추정 사망 시각이후였다. 죽은 남자친구가 A씨에게 문자를 보냈을 리는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아파트 현관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에는 사망 직전 남자친구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A씨의 남자친구는 한 남자와 함께 아파트에 들어갔고, 1시간 30분쯤 뒤 함께 들어간 남자가 혼자서 아파트에서 나오고 있었다.

A씨가 사망 직전 한 남자와 함께 있었던 것과, 신원미상의 인물이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 확인되면서 수사를 급물살을 탔다. 누군가 피해자의 스마트폰을 가져갔고, 이를 가지고 있는 자가 유력한 용의자가 된 것. 경찰은 A씨로 가장해 피해자의 스마트폰으로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통신사를 통해 위치추적에 들어갔다.

결국 용의자는 체포됐다. 하지만 용의자가 카메라에 찍힌 사람과 동일인이 확실한걸까. 스마트폰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실제 문자를 보낸 것은 이 사람이 맞을까. 설사 남자친구 사망 직전 함께 있었고,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해도, 실제 살인을 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감시카메라에 찍힌 영상과 문자메시지는 살인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 

◇디지털 자료는 얼마나 믿을만해야 증거가 될 수 있을까

대검찰청 과학수사부는 지난 2일 '2016 과학수사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형사절차상 디지털포렌식의 발전방향'을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는 미국과 독일, 일본의 전문가들이 참석해 디지털포렌식 자료의 증거 능력 인정에 관한 각국의 법제도와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발표를 맡은 케네스 마(Kennes Ma) 미국 LA 검찰청 검사는 지난 2008년 발생한 사건을 통해 미국의 디지털 증거능력 인정 현황에 대해 전했다. 

디지털 자료는 복제가 가능하고 작성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증거로 활용하는데 제약을 받는다. 명백하게 '믿을 만 하다'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증거로 사용되지 못한다.

이번 사건에서 디지털 자료는 어떻게 증거가 됐을까. 검찰은 용의자와 문자로 약속을 잡으면서 어떤 옷차림으로 나올 것인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실제 그는 정해진 옷차림으로 현장에 나타났다. 법원은 '정황상' 그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사람이 맞다며 문자메시지를 증거로 인정했다.

또 용의자의 집과 차를 압수수색한 결과 마리화나와 코카인, 감시카메라에 찍힌 가방과 슬리퍼가 발견됐다. 피해자인 남자친구 집에서는 용의자와 마약을 사고 판 거래목록, 돈 관계가 적인 종이가 발견됐다. 이들 역시 범죄 동기와 '정황' 증거가 됐다. 결국 용의자는 법원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다.

케네스 검사는 "미국에서는 디지털 문서를 작성한 사람이 증언을 하지 않더라도, 출처 등에 대한 객관적 자료와 문서내용을 토대로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면 정황 근거를 토대로 증거 능력을 인정 받는다"고 설명했다.

컴퓨터로 만든 문서, 문자메시지, 영상자료 등 디지털 증거가 급증하면서 이를 얼마나, 어떻게 증거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현장의 고민은 깊다.

한국의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성립의 진정함'이 증명이 되고 믿을 수 있을 때 증거로 할 수 있다. 그동안은 '진술에 의해', 즉 작성자가 스스로 디지털 자료를 작성을 했다고 인정할 때만 서류의 진정성이 증명돼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만약 작성자가 '내가 작성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하면, 아무리 명백해 보이더라도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해 증거로 활용하지 못했던 것.

이를 두고 논란이 일자 지난 5월 법이 개정됐다. 법 개정으로 디지털 자료를 만든 이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고 주장하더라도 '디지털포렌식 자료, 감정 등 객관적 방법으로 성립의 진정함이 증명'되면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디지털 자료가 증거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디지털 자료는 얼마나 명백하게 믿을 수 있어야 증거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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