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강요할 수는 없다

김광민 변호사의 '청춘발광(靑春發光)'…"역사는 다양한 시각의 경쟁을 통해 만들어진다"

김광민 변호사(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 2016.12.15 06:11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80년 광주 도청 앞에서, 87년 6월의 시청 앞 광장에서 어떤 이들은 피를 흘렸고 어떤 이들은 세월을 살아냈다. 이들 수많은 동시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거리에 서 나는 그들과 함께 착잡함과 뭉클함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과 그 엄청난 함성 속에서도 평화롭게 잠든 아가들, 올망졸망 어린것들과 아내를 앞뒤에 세운 월급쟁이 가장들, 까마득히 잊고 살다 학생 시절 함께했던 동아리들을 불러 모은 중장년들, 조심조심 행렬의 가장자리에서 구호의 끝마디를 따라 하는 노부부와, 낭랑한 소리로 단호하게 외치는 중고등학생 소년 소녀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축제의 마당을 내주기 위하여 거친 숨결을 가다듬으며 뒷길로 물러난 노동자·농민·시민 단체들, 질서와 안전을 위하여 길을 안내하고 청소하며 즉석 자원봉사자가 된 대학생들, 이들 위대한 시민들"(황석영 '100만 함성,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친다면 4500만도 넘는다. 하지만 그중에 100만이 나왔다고, 4500만 중에 3%가 한군데 모여 있다고,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는가. 그것도 1500단체가 불러내고, 매스컴이 일주일 내 목표 숫자까지 암시하며 바람을 잡아 불러 모은 숫자가, 초등학생 중학생에 유모차에 탄 아기며 들락날락한 사람까지 모두 헤아려 만든 주최 측 주장 인원수가"(이문열,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이끌어낸 7주 째 이어진 촛불집회를 상반되게 바라보는 글이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에 실렸다. 글쓴이는 다름아닌 황석영과 이문열이었다.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다는 두 언론사에 한국을 대표한다는 두 명의 문인이 동일한 현상을 상반되는 시각으로 바라본 글을 기고한 것이다. 황석영은 촛불집회를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에 빗대며 매우 높게 평가했다. 반면 이문열은 100만은 국민을 대표할 수 없고 이마저도 동원 또는 왜곡의 가능성이 있다며 촛불집회의 의미를 절하했다. 

"다수의 지지가 정당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역사는 다양한 시각의 경쟁을 통해 만들어진다"

글쓴이와 글을 담은 매체의 영향력 때문인지 즉각 치열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다양한 매체가 두 문인의 글을 소개했고 다양한 평가가 쏟아졌다. 이 과정에서 촛불집회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은 더욱 정치하게 발전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촛불집회에 우호적인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대중은 이문열 보다 황석영의 시각에 지지를 보내는 듯하다. 그리고 아직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남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촛불시민들이 요구대로 가결되었다. 그렇다면 황석영의 시각이 옳은 것일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다수의 지지가 반드시 정당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며 역사는 이처럼 다양한 시각들의 경쟁을 통해 만들어진다.

어떠한 사건에 대한 시각은 하나일 수 없고 바라보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할 것이다. 황석영과 이문열의 상반된 시각이 그러했듯 다양한 시각이 서로 경쟁할 때 사회는 발전한다. 결국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사회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다양성이 억압된다면 사회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만약 국가통치라는 근본적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인 촛불집회에 대해 한 가지 시각만 강요된다면 이는 사회적 낭비이며 비극이다. 옳든 그르든 견제 받지 못하는 사상은 발전할 수 없고 전체주의로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한 교육부는 결국 지난 달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일선 학교에 배부했다. 한 개의 역사교과서만 존재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역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에 대해 한 가지 시각만 경험한 이들이 현실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때문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교육 문제만이 아닌 사회전체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보다 더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사상가 그람시는 권력의 지배는 국가기구의 물리적 통제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교회, 학교, 언론 등 시민사회의 다양한 제도를 통해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한가지 시각만 강요된 학생들은 건전한 비판을 하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 없다"

그람시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 역사상 독재자들은 거의 대부분 학교를 장악하려 했다. 중학교 과정까지 의무교육인 한국을 기준으로 보면 최소 9년에서 12년까지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한 교육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은 권력자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제도일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권력자들의 의도대로 교육 받은 학생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는 것은 가장 확실한 권력유지 장치일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을 규정하고 있다. 교육의 자주성은 어떠한 교재로 어떻게 가르칠지를 교육기관이 외부의 간섭 없이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확보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의 100년지 대계라는 교육에 수준의 검토 없이 모든 교과서를 사용하게 할 수는 없다. 때문에 교육기관의 주체성을 보장하되 수준이 낮은 교과서가 사용되는 것은 방지하기 위해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만 사용되도록 하는 검정 교과서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육부의 국정 역사교과서가 권력의 장기집권을 위한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한 가지 시각만 강요된 학생들은 사회에 건전한 비판을 하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고 건전한 비판이 사라진 사회는 죽은 사회일 수밖에 없다. 이는 별도로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역사에 대한 한 가지 시각만 강요된 사회의 실패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이 황제보다 높은 권력을 가졌던 중세 유럽은 카톡릭 사상과 역사만이 강요되었고 오늘 날 철학자들은 이 시대를 '사상적 암흑의 시대'라 일컫는다. 국정역사교과서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던 유신시대는 대한민국 역사의 오점이 되었고 김일성 가문을 신격화한 교과서만 존재하는 북한은 오늘 날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가 되었다.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이다.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자신의 모습에 오늘도 힘들어한다. 생물학적 회춘은 불가능해도 정신적 회춘은 가능하리라 믿으며 초겨울 마지막 잎새가 그러했듯 오늘도 멀어져가는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적 회춘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청소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