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일반

[친절한판례氏] 출시 1년된 시계, 180년 전통으로 광고…'사기죄'

"소비자들로 하여금 시계의 품질과 명성을 오인시킨 행위"

장윤정(변호사) 기자 2017.04.27 18:14

삽화 = 이지혜디자이너


각종 매체를 통한 광고를 보다 보면, 상품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심어지기 마련이다. 상품에 대한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광고라는 점에서 광고 속 상품 미화는 어느 정도 용인이 되고 있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소비자들이 냉철한 판단을 통해 광고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요구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광고의 기능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상품의 좋은 면을 강조하기 위해 자칫 거짓 정보를 포함하거나 지나친 과장을 하게 될 수도 있으며, 그런 부분에서까지 소비자의 판단력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때문에 우리 법은 허위·과장광고를 금지하고 있으며, 많은 사례에서 어떤 경우까지를 금지되지 않는 광고로 용인할 수 있는지가 문제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상품을 허위·과장광고한 판매자를 형법상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를 판단한 대법원 판례(2008도1664)가 있다.

 

A씨는 해외에서 시계를 수입해 국내에서 이를 판매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해외 X브랜드의 시계를 국내로 들여와 광고 등을 통해 홍보하고 판매했는데, A씨가 시계를 수입할 당시 이 브랜드는 시장에 출시된 지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신생 브랜드로 명성이나 인지도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A씨는 시계를 고급 이미지화해 소비자들이 높은 가격에도 이를 구입하게끔 만들고 싶었고, 결국 X브랜드에 대한 거짓 역사와 전통을 지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는 X브랜드 본사를 설립한 가문이 3대째 180년 동안 시계제조업을 이어온 브랜드라는 광고 문구를 작성해 잡지나 홈쇼핑 방송, 기타 각종 매체를 통해 홍보했다. 그러자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은 X브랜드가 오랜 전통을 가진 해외 명품 브랜드라고 생각했고, 개당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입했다.

 

실제 X브랜드를 만든 가문은 3대째 귀금속 세공업을 했을 뿐 시계 제조와 관련된 일은 전혀 한 바 없었으며, A씨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검찰은 "A씨가 허위 정보를 홍보해 시계를 고가에 판매했다"며 그를 사기죄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3대 째 귀금속 세공업을 한 가문의 브랜드를 3대 째 시계 제조업을 한 가문의 브랜드로 광고한 부분을 사기죄의 구성요건인 '기망행위'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이에 대해 A씨 측은 "광고에는 다소 과장이나 허위가 수반될 수 있으며, 해당 문구 역시 그런 허용 범주 내 표현이었고, 구매자들에게 상품이 판매된 이상 판매자들에게 피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의 광고 문구가 형법 제347조에서 말하는 '기망행위'에 해당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상품의 선전, 광고에 있어 다소의 과장이나 허위가 수반되는 것은 그것이 일반 상거래의 관행과 신의칙에 비추어 시인될 수 있는 한 기망성이 결여된다"면서도 "거래에 있어 중요한 사항에 관해 구체적 사실을 거래상의 신의성실의 의무에 비추어 비난받을 정도의 방법으로 허위로 고지한 경우에는 과장, 허위광고의 한계를 넘어 사기죄의 기망행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A씨의 광고를 본 소비자들은 X브랜드가 180년 전통을 가진 시계 브랜드로 생각하며 시계의 품질과 명성이 뛰어날 것으로 오인하게 된다"면서 "그런 착각으로 소비자들은 개당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시계임에도 이를 구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X브랜드의 거짓 전통을 허위로 꾸며 광고한 A씨의 행위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사기죄의 기망행위로 보기 충분한 정도라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다.

 

한편, 시계를 구입한 사람들은 해당 시계를 수령했으므로, 재산 침해가 전혀 없어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A씨의 주장 역시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재물편취를 내용으로 하는 사기죄에서 기망으로 인한 재물의 교부가 있으면 그 자체로써 피해자의 재산침해가 돼 사기죄가 성립하는 것"이라며 "상당한 대가가 지급됐는지 여부는 사기죄 성립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이른바 '명품'이라 불리는 고가품 또는 사치품의 경우, 제품 자체의 품질이나 디자인 외에 브랜드의 역사나 전통, 신뢰도 등도 그 제품의 가치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위 시계를 전통 있는 브랜드의 제품으로 오인한 이 사건 구매자들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없다고도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 판례 팁 = 사기죄와 같은 재산범죄의 피해자를 특정함에 있어 우리 법원은 '실제 재산상 손해를 입을 위험이 있는 자'를 피해자로 보고 있다. 위 사례에서는 A씨의 광고를 보고 X브랜드 시계를 구입한 구매자들이 피해자다.

 

 

◇ 관련 조항

- 형법

제347조(사기)

①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전항의 방법으로 제삼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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