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1년반만에 숨진 건설사 신입사원…法 "업무상재해"

입주민 민원·상사 질책 시달려…재판부 "업무로 극심한 스트레스 받아 사망 이르러"

김종훈 기자 2017.06.18 12:00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수천개에 달하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민원과 상사의 질책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설사 신입사원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재해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하태흥)는 한화건설 신입사원이었던 A씨의 유족들이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줄 수 없다고 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A씨는 2013년 한화건설에 입사해 대전 소재 아파트단지 공사현장으로 발령받았다. 이곳에서 A씨는 입주민들의 아파트 하자보수 신청을 처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4개월의 근무기간 동안 A씨가 전담한 접수 건수는 2600여건에 달했다. 같이 업무를 하던 동료들이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업무량은 배로 늘어났다. 이중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상당수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역 최고 분양가를 기록하다 거래가가 하락하면서 일부 입주민이 A씨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다. 
 
직장에서 A씨는 입주민들의 무리한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단 이유로 호통을 맞았다. A씨는 '윗분들께 무능한 인간으로 찍혔다"며 자책했고 우울증이 악화됐다. 회사는 A씨에게 3년 간 해외파견을 권하며 면담을 하기도 했다. A씨는 이 일로 사직을 고민할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A씨는 입사 1년 6개월 만인 2014년 6월 숨진 채로 발견됐다. 유서엔 '죄송하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A씨 유족들은 A씨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요구했지만 공단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A씨 유족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에서 A씨 유족들은 "A씨는 업무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을 얻었다"며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유족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A씨는 신입사원으로서 입주민을 직접 대면하고 응대하는 업무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량도 그 자체로 과중해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는 업무처리가 미숙하단 이유로 술자리에서까지 질책을 받았던 탓에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열심히 하려했던 일로 오히려 질책을 받아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해당 공사현장을 떠날 예정이었으나 다시 다른 공사현장에서 같은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며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돼 우울증세가 더 악화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씨의 주변상황과 우울증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면 A씨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며 "유족들의 청구는 이유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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