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수' 판사회의에 역풍···'사법부 내전'

판사들, 급진적 사법개혁으로 법관 독립성 훼손될까 우려

이태성, 송민경 기자 2017.06.21 18:00
양승태 대법원장/ 사진=뉴스1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등 사법부 적폐해소를 위해 전국 판사들이 단체행동에 나선 데 대해 일부 판사들이 반발하면서 사법부가 내홍에 휩싸였다. 일각에선 법원행정처가 반대 여론의 배후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나 근본적으론 급진적 사법개혁에 따른 '법관 독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21일 대법원 등 각급 법원에 따르면 법원 내부전산망 '코트넷'에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이하 법관회의)의 대표성·정당성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지난 19일 법관회의가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및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추가조사 △법관회의 상설화를 통한 사법행정 참여권 보장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자들의 업무배제 등을 의결한 직후부터다. 

이 글들은 주로 법관회의의 참가자 100명 가운데 약 40%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며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조사 소위원회 소속 5명 중 4명 역시 인권법연구회라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법관회의가 특정 법관 연구모임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코트넷에 익명게시판이 신설된 건 지난달 하순이었다. 양 대법원장이 법관회의 소집요구를 수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19일 법관회의에서 고강도 개혁안을 의결한 직후부터 익명게시판에는 "법관회의가 판사노조를 만드려 한다" "사법부가 소수급진세력에 휘둘린다"는 등 글들이 잇따라 게재됐다.

이에 대해 재경지법의 A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에 문제의식을 느낀 전국 각급법원에서 판사회의를 통해 선출된 대표단이 모인 것이 법관회의"라며 "대법원장이 약속해 추진된 법관회의에 대해 뒤늦게 대표성을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판사들이 사법부내 소통을 요구할 때는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법관회의 등을 거치며 수세에 몰리자 법원행정처가 갑자기 익명게시판을 만든 것도 수상하다"며 "익명게시판 자체가 법원행정처의 입장을 숨어서 대변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법관회의를 비판하는 글에는 법관회의가 사법개혁을 급진적으로 몰고가 자칫 법관의 독립성을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담겨 있다. 

재경지법의 B판사는 "지금의 법관회의는 정치권 등 외부세력이 사법개혁에 개입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같은 지법의 C판사 역시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판사들이 '눈치를 본다'고 했는데, 청와대발 개혁이 시작되면 이제는 국회, 청와대 눈치까지 봐야 한다"고 우려했다.

법관회의는 이날 법원행정처를 통해 대법원에 의결안을 전달됐다. 의결 내용을 수용할지 여부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결정한다. 그러나 양 대법원장이 이를 즉각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법관회의의 의결은 상징성은 있지만 강제력이 없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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