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살롱] "기한이익 상실하셨어요"?…법조계의 외계어들

구거·상린자·이의보류…알아듣기 쉬운 대체 단어 있으면 바꿔야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7.08.21 05:00


퀴즈 하나! 다음 법률용어 중 의미가 잘못 짝지어진 것을 고르시오.


①궁박-곤궁하고 절박한 사정
②제각-제거
③폐색된-막힌
④몽리자-이용자
⑤최고-취소

온통 외계어 같으시죠. 모든 보기가 답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의미가 잘못 짝지어진 답은 5번입니다. '최고'라는 단어는 촉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법률용어입니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민법에는 이처럼 법률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용어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민법엔 ‘경계에 설치된 구거는 상린자의 공유로 추정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한국어가 맞는지 의심이 듭니다. '경계에 있는 도랑은 서로 경계가 이웃해 있는 땅의 소유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뜻이지만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기한의 이익을 상실하셨습니다.' 이건 무슨 뜻일까요? 쉽게 말해 '빌린 돈을 지금 당장 갚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한의 이익이란 어떤 행위를 나중에 해도 됨으로써 얻는 이익을 말합니다.


법조계에서 쓰는 말 중에는 일본식 표현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 법이 만들어질 때 일본어에서 온 단어들이 많이 섞여 들어갔기 때문인데요.


'적극', '소극'이라는 말도 그 중 하나입니다. 법원의 판결문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문 중 ‘손해배상 여부’에 ‘적극’이라고 돼 있다면 손해배상이 가능하단 얘기입니다. '소극'이라고 돼 있으면 불가능하다는 의미인데, 이 역시 처음에 무슨 뜻인지 단번에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자복하다’란 말도 있습니다. 범죄 피해자 등의 고소가 있어야만 재판으로 넘어갈 수 있는 범죄를 뜻하는 친고죄에 대해 범인이 피해자에게 자신의 범죄 사실을 알리는 것을 말하는데요. 이 역시 일상생활에선 잘 쓰이지 않죠.


뜻을 제대로 모른다면 오해를 할 만한 단어도 있습니다. ‘이의를 보류하다’라는 말이 바로 그것인데요. 대개 보류라고 하면 뭔가를 하다가 중단하고 나중으로 미뤄두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선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의를 제기하다'의 의미로 쓰입니다.

법률서비스의 최종소비자는 일반 국민들인데, 이렇게 국민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법조계에 난무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요? 의뢰인들이 법률 상담을 받으면서 겪는 고충 가운데 하나가 “변호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일부 변호사들은 이미 법조문에 쉽게 바뀌어 있는 단어도 기존의 어려운 단어로 사용하곤 합니다. 법률전문가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단어 대신 일반 국민들로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바꿔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법제처는 2006년부터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길이 멉니다. 물론 단어가 어렵거나 뜻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로 무작정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꼭 필요한 단어는 남겨둬야겠죠. 그렇지만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풀어 쓸 수 있는 다른 단어가 있다면 굳이 어려운 단어를 고수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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