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일반

[친절한 판례氏] 학폭위 교사, 학부모 스트레스에 결국…

학부모 강한 질책 받고 극단적 선택…공무와 자살 사이 인과관계 인정돼야 보상 가능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7.09.12 05:05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운영하던 교사가 사건 처리 과정에서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양측의 학부모로부터 질책을 받아 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한 경우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를 다룬 대법원 판례(2014두47327)가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1991년부터 중학교 교사로 근무해 온 A씨는 2012년 3월 B중학교로 전보돼 처음으로 학생생활인권부장을 맡았습니다. 이후 학교폭력의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및 그 학부모들과의 면담 및 진술서 등 서류 작성, B중학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개최 준비와 회의 참석, 학폭위 등에서 의결된 조치의 집행 등을 수행하게 됐습니다.

A씨는 평소 성격이 활달하고 책임감이 강한 교사였지만 학폭위 활동을 하면서 몇 차례에 걸쳐 학생들에 대한 출석정지, 전학처분, 선도처분 등 조치가 결정되자 스승으로서 학교폭력의 가해학생이나 피해학생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학교폭력에 관한 학생관리 소홀과 학폭위의 징계 결정을 탓하는 학부모들의 질책과 항의 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A씨는 교장에게 보직을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해 9월 B중학교의 2학년 학생 12명이 1학년 학생 13명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하였다는 신고가 들어와 A씨는 가해학생을 면담하는 등 사실조사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고한 피해학생을 가해학생이 협박하는 일이 발생해 피해학생의 학부모들이 학교폭력에 관하여 항의했고, 가해학생들에 대하여는 출석정지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A씨는 학폭위에서 가해 학생별로 조치를 달리해야 하고 모두 전학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가해학생 6명 모두에 대하여 전학조치가 의결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학폭위에는 가해학생의 학부모가 위원으로 참석해 가해학생 학부모들과 피해학생 학부모들을 중재하려 했고, 피해학생 학부모들은 이에 항의했습니다. 학폭위 위원 중 변호사인 위원은 A씨에게 '학폭위 개최 당일 가해학생의 학부모가 심의에 참여할 수 없는 제척사유가 있음을 확인하였어야 한다'는 문자를 보내고, 다음날에도 '가해학생 학부모의 학폭위 참석 건은 지나칠 수 없는 일이므로 9. 17. 교육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겠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A씨는 가해학생 학부모의 학폭위 출석에 관해 '책임질 일이 있으면 제가 모두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공무원연금공단은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며 유족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공무원연금법 제61조 제1항은 순직공무원에게 유족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는데, 순직공무원이란 재직 중 공무로 사망한 경우 또는 재직 중 공무상 질병 또는 부상으로 사망하거나 퇴직 후 그 질병 또는 부상으로 사망한 공무원을 말합니다. A씨의 경우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A씨의 아내는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유족보상금 부지급결정처분 취소소송을 냈습니다.

쟁점은 공무상 질병에 해당하는지였습니다. 원심은 "사회평균인 또는 망인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도저히 감내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과중한 공무상 스트레스와 그에 따른 우울증에 기인하여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고 볼 수 없다"며 A씨의 사망과 공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2014두47327)은 유족의 손을 들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공무상 질병이란 공무집행 중 그 공무로 인하여 발생한 질병을 뜻하는 것이므로, 공무와 질병의 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면서도 "다만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봤습니다.

대법원은 "공무원이 자살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에, 공무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하거나 공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그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에 겹쳐서 질병이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는 공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며 "그리고 그와 같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하여는 자살자의 질병이나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 · 심리적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판례는 위와 같은 사정을 감안할 때 "A씨는 자살 직전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고통으로 급격히 우울증세가 유발되었고, 그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여지가 충분하다"면서 "A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비록 A씨에게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은 구체적인 병력이 없다거나 A씨의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A씨의 죽음과 공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관련조항

공무원연금법
제3조(정의) ①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공무원"이란 상시 공무에 종사하는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가.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그 밖의 법률에 따른 공무원. 다만, 군인과 선거에 의하여 취임하는 공무원은 제외한다.
나.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직원
2의2. "순직공무원"이란 제1호에 해당하는 공무원으로서 재직 중 공무로 사망한 경우 또는 재직 중 공무상 질병 또는 부상으로 사망하거나 퇴직 후 그 질병 또는 부상으로 사망한 공무원을 말한다.

제61조(순직유족보상금 및 위험직무순직유족보상금) 
① 순직공무원의 유족에게 순직유족보상금을 지급한다. 
② 제1항의 순직유족보상금은 공무원이거나 공무원이었던 자의 기준소득월액의 10분의 234에 상당하는 금액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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