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허로 회사차 몰다 사망…법원 "산재" 이유는

심재현 2024.04.29 11:02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회사 업무를 위해 안전시설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도로에서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 숨졌다면 무면허 상태였더라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박정대)는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 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지난달 7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21년 새벽 경기 화성시 공사 현장에서 나오는 흙을 운반하기 위해 미개통된 도로를 운전하던 중 핸들을 잘못 조작하는 바람에 배수지로 추락해 숨졌다. A씨는 1종 대형 운전면허가 있었지만 음주운전으로 취소된 상태였다.

유족은 2022년 4월 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다가 공단이 "사고 당시 무면허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해 도로교통법 등을 위반한 중대한 과실로 사고가 발생했다"며 거절하자 소송을 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근로자의 범죄 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

재판부는 "이번 사고는 A씨의 범죄행위가 사망 등의 직접 원인이 되는 경우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업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의 범위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사고 발생이 근로자의 무면허 상태와 연관된다기보다는 업무 현장 자체의 위험이 현실화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A씨의 운전면허가 취소된 것과 상관없이 1991년부터 운전했던 만큼 사실상 차량을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은 있었고 무면허운전 행위가 사고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볼 수는 없다"며 "사고 현장이 미개통된 도로로 노면이 젖어 매우 미끄러웠고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던 데다 조명시설 등 안전 시설물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사고가 온전히 A씨의 업무상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근로자가 안전에 관한 주의의무를 조금이라도 게을리했을 경우 도로 여건이나 교통상황 등 주변 여건과 결합해 언제든지 현실화할 수 있는, 업무 자체에 내재한 전형적인 위험이 사고로 현실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단이 불복하지 않아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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