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횡령·배임 피고인 보석 때도 성폭행범처럼 '전자발찌' 채운다

조준영 2024.05.08 18:20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재판 도중 보석 석방될 경우 성폭력, 미성년자 유괴 전과자 등에게 채우는 위치추적장치인 '전자발찌'를 착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형을 살고 나왔지만 재범을 할 우려가 있어 감시를 받아야 하는 흉악범죄자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투는 피고인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재판 중인 피고인이 도주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나온 특단의 조치지만 인권침해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8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법무부는 최근 전자보석 관련 업무지침을 변경해 피해액이 5억원 이상인 사기·횡령·배임 등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 위반 혐의 피고인과 전세사기 등 피해자를 다수 발생시킨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 피고인에 대해 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전자보석 대상자가 전자팔찌를 파손하고 도주한 데 따른 조치로 알려졌다.

전자보석은 구속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전자장치 부착을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하는 제도다. 불구속 재판원칙을 실현하고 교정시설 과밀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20년 8월 도입됐다.

전자보석은 피고인의 출석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에 법원 입장에서도 보석허가를 늘릴 수 있는 이유가 됐다. 기존에는 구속기소된 피고인 중 5%도 안되는 사람에게만 보석이 허가됐다. 피고인이 재판이 끝나기 전 도주할 우려가 있다는 있다는 게 '불구속 재판'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였다.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전자장치는 발목 또는 손목에 부착토록 규정하고 있다. 제도시행 당시 법무부는 스마트워치 방식의 손목시계형을 내세웠다. 하지만 법무부는 업무지침에 따라 폭력·상해 등 강력범죄 피고인에게 전자발찌를 채웠고 전자발찌 착용 범죄군을 확대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다중피해범죄의 경우 전세사기 '등'으로 규정돼 이 지침을 근거로 자본시장법 위반 피고인에게 전자발찌를 채운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등'에 해당하는 다른 다중피해범죄가 무엇인지는 지역 보호관찰소가 결정한다.

법조계에서는 범죄예방 효과와 엄단 의지를 강조한 법무부의 고육지책을 이해하면서도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고인을 위험한 범죄자로 보고 일률적으로 사회적 낙인효과가 큰 전자발찌를 채우는 것은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기업인들이 보석으로 나갔다가 전자발찌를 찬 채 바이어를 만나면서 재판을 받고 구속기간이 만료돼 나가면 전자발찌 없이 재판을 받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라며 "재판 과정에서 구속된 기업인들이 전자발찌 때문에 보석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자칫 기업활동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전자발찌로 모든 전자감독을 하고 있는 법무부와 보호관찰소의 운영상 편의를 이유 때문인 것 같다"며 "운영 시스템이 전자발찌에 다 맞춰져 있다보니 추가로 손목형 장치를 구매하고 별도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무부는 머니투데이에 "전자장치를 발목, 손목 또는 다른 신체 부위 등에 부착하는 기준에 대한 사항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개하기 어려움을 양해해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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