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일과 육아? 시계추 원리 활용"

[인물포커스] 전주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김미애 기자 2016.10.14 11:25


새벽 5시. 17개월 된 아들은 '일어났다'는 걸 알리려 자는 엄마를 흔든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아이와 함께 거실로 나가 놀아주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뒤늦게 출근준비를 하려 하지만 엄마가 외출하려는 걸 알아챈 아이는 좀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맞벌이를 하던 기자가 1년간 육아휴직을 하며 아이와 보낸 시간은 엄마와의 애착 관계를 형성시킨 반면, 아빠의 육아 참여는 뒷순위가 돼버렸다.

모 방송국의 드라마 '워킹맘 육아 대디'처럼 아내는 일하고, 아빠가 육아휴직을 했다면 어땠을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체 육아휴직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5년 5.6%로 저조한 수준임을 고려하면, 아직도 직장 내 남성의 육아휴직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현실이 이렇듯 육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는 워킹맘들도 있다.

‘버텨라 언니들'의 저자 전주혜 변호사(50·법무법인 태평양)는 워킹맘들에게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일과 육아 사이의 균형을 맞추라"고 조언한다. 지난 12일 사무실에서 만난 전 변호사는 "인생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42,195㎞의 마라톤이므로 멀리 보면서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다. 자기 일을 포기하지 않고 경계녀(경력을 계속 이어나가는 여성)로서 직장에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워킹맘의 직장생활.."일과 육아 사이 균형을 맞춰야"

전 변호사는 22년간 법관으로, 퇴직 후엔 변호사로 일하면서 고등학생 딸 아이와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키워낸 워킹맘이다. '야간 업무는 필수'라는 바쁜 법조계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고 기르며 자기 일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그는 '육아'를 위해 사회 인식이 변하는 것만큼이나, 부부가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요일을 정해 놓고 부부중 한 사람이 먼저 퇴근해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전 변호사는 "무엇보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죽도 밥도 아니라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지는 워킹맘들도 있다"며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영원히 계속되는 건 아니다. 아이가 커갈수록 일과 육아의 병행이 훨씬 수월해진다"고 조언했다.

"아이를 기르고 가정을 꾸리는 일만큼 일하는 재미를 느끼는 워킹맘이라면, 일을 포기해서는 안 돼요. 힘들더라도 우선 10년을 버티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이 되면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어서 예전보다 손이 덜 가게 되죠. 일을 그만뒀다가 다시 일이 하고 싶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 변호사는 "워킹맘의 일은 마치 시계추와 같아 가정 아니면 일 양쪽을 왔다 갔다 해야 하지만 항상 가운데 있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균형은 6시를 중심으로 흔들리는 시계추가 4시30분과 7시30분을 벗어나지 않을 때다 "무게추를 잘 조절하면서 멀리 내다봐야 해요."

또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는 자기 계발에 쏟을 시간이 거의 없다는 점이지만, 회사에 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저절로 무게추가 일로 기우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법원에 있을 때 알고 지낸 어느 선배가 퇴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쉬지 않고 일만 했던 일화를 소개하기로 했다. 전 변호사는 "집중도가 좋아 일의 효율성이 높았던 그 선배는 힘든 육아 시기를 지나 지금은 성공한 법조인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할 순간.."육아휴직을 조커로"

육아 친화적인 회사 분위기가 아니라면 육아휴직을 앞두고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다. 경력 단절에 대한 걱정, 입사 후 줄곧 앞서나가던 자신이 동료들보다 뒤처진다는 느낌, 승진을 앞두고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닐까 등등.

전 변호사는 "육아휴직을 다녀온 이후 자신의 위치가 애매해질까 봐 휴직을 안 하려는 경우도 있다"며 두 가지 떡을 다 얻을 수는 없다고 조언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육아휴직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에게 엄마의 손길이 절실할 때가 있다. 3세 미만, 초등학교 1~2학년 시기가 특히 그렇다. 이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카드에서 조커는 가장 긴요할 때 사용해야 하고, 아이 곁에 있는 것이 절실할 때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세요." 그도 둘째 아이 6살 때 육아휴직을 조커로 활용한 경험이 있다. 전 변호사는 "엄마의 부재가 아이의 친구 관계에 영향을 주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속상한 적이 많았다"며 워킹맘의 숙명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전 변호사는 "아이를 낳게 되면 아무리 일이 출중한 사람이라도 어느 정도는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이 뒤처질 수가 있다"며 "마치 달리기 경쟁하다가 아이를 업고 달려야 하는 상황과 같다. 우선순위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약간의 공백은 복직하고 나서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했다.

2년 전 변호사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전 변호사는 엄격한 자기 관리가 요구되는 법원을 떠나 좀 더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고 싶었다고 한다. 여변호사 4200여명을 대변하는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직도 맡고 있다.

전 변호사에게 일이란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 주고,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다. 좌판의 죽은 생선이 아니라 펄떡펄떡 뛰는 생선처럼 나에게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산소 같은 활력소, 그것이 바로 일하는 즐거움이다.

"일을 그만둔다면 나의 자신감, 나의 당당함은 사라지고 활력을 잃게 될 것 아닌가요. 연기자 이순재씨처럼 80세까지 일하고 싶어요. 권리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만큼, 당사자인 여자들도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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