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L리포트]"나는 살아있어요" 실종선고 16년 만에 새 삶

사망처리 상태에서 형사 처분..실종취소로 기초생활보장수급권 받을 수 있어

김미애 기자 2016.10.26 14:35

/이지혜 디자이너


# 대상자는 가족들과 재산문제로 다툰 뒤 연락을 끊어 생활하던 도중, 가족들이 법원에 실종 신고해 사망 처리됨. 전남 신안군에서 염전 노동자로 생활하다 탈출했으며 현재 교회의 지원을 받아 고시원에서 거주. 사망 말소된 상태라서 기초생활 수급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음.

서울시 복지본부 희망복지지원과 '더 함'에 접수된 A씨(56)의 서울북부보호관찰소 상담내용이다. 복지사들이 접한 A씨의 생계는 생각보다 더 열악했다. A씨는 고시원비 22만원 가운데 교회에서 도움 받는 20만원을 제외한 2만원을 매달 연체하고 있었다. 복지사를 만나러 올 대중교통비도 마련하지 못했다. 핸드폰이 없어서 고시원을 통해서만 연락이 가능했다.

사망자 신분으로 法 보호 받지 못한 세월

가족과 불화를 겪다 1993년 집을 나왔을 당시 A씨는 33살이었다.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가족의 실종신고로 2000년 1월 법원에서 심판이 내려져 A씨는 호적상 사망 상태가 됐다. 막노동하며 생계를 근근이 이어오던 A씨가 자신의 실종선고를 알 리가 없었다.

일정한 직업 없이 생활해오던 A씨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생계형 절도 범죄의 늪에 빠지게 된다. 가게 신발장의 신발을 훔치거나 양복 속의 지폐를 훔치기도 했다. A씨는 "배고프면 물건을 훔치다 걸려 여러 차례 절도죄로 처벌을 받았고 노숙으로 떠돌 때는 약간의 돈을 받고 신분증을 빌려주다 걸려 처벌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신안군 염전 노예로 팔려가기까지 했다. 일용직 시장에서 팔려가 월 20만원을 받고 밤낮으로 일하다 가까스로 1년 만에 탈출했다

몇 년 전 여권발급 문제로 구청에 들렀다가 실종선고 된 상태임을 알았지만 A씨에게 실종 취소 절차는 막막했다. A씨는 "수년 전 지인으로부터 중국에 가서 같이 일을 하자는 권유를 받은 후 여권을 만들려고 구청에 방문했을 때 (사망선고 사실을) 알았다"며 "깜짝 놀랐으나 법률지식이 부족해 즉시 실종신고를 취소할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지난해 7월 또 한 번의 절도 범죄로 보호관찰을 받게 된다. A씨를 면담해오던 보호관찰 담당자는 호적상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지 못한다는 A씨의 사정을 서울시 '더 함'의 복지사에게 전했다.

A씨가 수급비를 지원받도록 돕기 위해선 우선 그의 실종선고를 취소해야 했다. 수급비 지원 대상이 되면 생계비를 지원 받을 수 있다. 의료보험비가 면제되고, 전기·통신·TV수신료·도시가스·수도 등의 요금 할인 혜택도 있다.

보호관찰중 복지사 등 도움..실종취소

절도 혐의로 A씨가 수차례 형사처분을 받는 동안 수사기관과 법원 관계자 누구도 그의 실종 취소 절차를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 서류상 사망자 신분으로 법의 엄격한 심판만 받아온 셈이다.

서울시 사회복지 공익법센터의 도움으로 지난 17일 A씨에 대한 실종 취소 심판 청구가 법원에 접수됐다. 이번 사건을 대리한 이상훈 변호사는 "A씨가 사망자로 처리돼 모든 행정문서는 말소자로 분류돼 있고 자신의 신분마저도 증명할 수가 없다"며 "사회생활에 필요한 증명서 발급 등 모든 것이 제한된 채 생활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A씨에 대한 실종 취소 판결까지는 심판청구가 들어간 이후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 '더 함'은 실종 취소 판결이 나기 전에 A씨가 심판 청구 접수증만으로 수급권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받을 길을 찾고 있다.

한정혜 상담사는 "A씨를 단순 기초수급권자가 아닌 조건부 수급권자로 신청할 예정"이라며 "일을 하면서 사회에 적응해 나가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능력 있는 조건부수급자는 자활기관이나 고용센터로 연계돼 자활(고용)사업에 참여하면서 생계비를 지급 받는다.

A씨는 사망자 신분에서 벗어나기까지 16년이 걸렸다. 법적으로 자신이 사망자 신분이라는 걸 알고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세월만 보냈다.

A씨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실종자의 절도 사건을 심리했던 한 부장판사는 "국가가 법으로 국민을 형사처분만 할 뿐, 국민의 권리를 되찾아 주는 일은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사단계에서 실종선고 된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실종 취소를 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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