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L리포트]공무원 착오로 '남의 땅' 된 '내 땅'

경정등기로 '사라진 땅' 등기 복구 가능해져..법원서 구제방안 마련

김미애 기자 2016.10.20 05:00

/이지혜 디자이너


"47년간 내 땅인 줄만 알았던 땅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어요. 판사님, 억울한 사정 좀 살펴주세요."

3년 전 윤모씨는 충북 충주시에 사놓았던 땅을 팔려고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4680평(1만4083㎡)에 달하는 산지가 지금은 남의 것이었다.

조상 묘를 옮겨 놓은 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땅을 사고판 적이 없는데 느닷없이 내 땅이 아니란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수소문해보니 담당 등기계 공무원의 착오로 발생한 일이었다.

47년간 소유주가 바뀐 "'내 땅' 돌려줘"

윤씨의 이야기는 박모씨 소유였던 충주시 A토지가 분할된 5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5년 6월23일 A토지는 B와 C토지로 분할됐고, 같은 날 다시 C토지는 지목이 '산'에서 '전(田)'으로 바뀌면서 지번이 D로 변경됐다. 윤씨는 박씨로부터 1969년 3월10일 B토지를 사서 현재까지 보유 중이다.

이후 C토지를 샀던 김모씨가 1981년 3월3일 등기소에 소유권이전등기신청을 했는데, 이때 등기계 공무원의 착오로 문제가 일어난다. 실제로는 C토지 지번이 D로 변경된 것인데, 공무원은 B토지가 D로 변경된 것으로 잘못 알고, D토지 등기부를 새로 편재하면서 B토지 등기부를 폐쇄해 버렸다.

윤씨가 12년 전 매수한 B토지 등기부가 사라지고, D토지(실제는 C토지) 등기부와 C토지 등기부가 남게 된 것이다. 그 후 윤씨 소유 땅으로 등기된 D토지는 B토지인 것처럼 수십 년간 거래되며 소유자만 변경됐다.


윤씨 땅 B토지의 실제 면적은 김씨 땅 C토지 보다 11배 크다. 땅을 사고팔아온 사람들도 매매계약서상 'D토지'라고 썼지만, 실제로는 4680평인 B토지가 아니라 417평(1379㎡)인 C토지를 거래해 왔다.

"공무원의 착오로 발생한 일인데,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요. 답답합니다."

뒤늦게 등기부가 폐쇄된 사실을 윤씨는 부랴부랴 충주지원 등기관에 "폐쇄된 B토지 등기부를 부활시켜 달라"고 했지만 2014년 11월 각하됐다. 등기관은 D토지를 매입한 현 소유주와 이해관계가 있어 확정판결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를 댔다.

윤씨는 이의신청을 했지만 이번에는 "두 토지가 유사하지만 등기관의 착오가 있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며 윤씨의 사정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지혜 디자이너


법원 "공무원 착오로 잘못된 등기 바로 잡아라"

4860평의 토지를 이대로 날리는 것일까. 윤씨는 D토지 등기부상 현재 소유주 이모씨 등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소송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이씨는 "D토지를 정당한 절차로 샀고, 법원에서 발행한 토지대장과 지적도 등 서류상에도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담당자의 착오인데도 우리에게 그 책임을 덮어씌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섰다.

윤씨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법원도 이런 사정 때문에 깊게 고심했다. 윤씨의 땅 B토지 등기부를 부활시키고, 이씨의 D토지 등기부를 다시 폐쇄하면, 이씨는 매입한 땅이 사라지게 돼 손해를 보게 된다. 공무원의 착오로 비롯된 피해가 이씨에게 떠넘겨지는 것이다.

우선 법원은 공무원의 착오를 인정하고 "이씨 명의로 된 D토지의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라며 윤씨의 말소 청구를 받아들였다.

나아가 법원은 이씨 또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지혜를 짜냈다. 재판부는 판결이유에서 "윤씨의 '경정등기 신청'을 허용하는 것이 소송경제에 부합하는 신속한 권리회복 조치"라고 설명했다.

판결문에 등기관이 경정등기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준 것이다. 경정등기가 되면 D토지 역시 소유권이전등기가 '말소'되지 않고 등기부상 착오로 잘못 기재된 부분만 '수정'되기 때문에 윤씨와 이씨 모두에게 바람직하다.

또한 재판 비용을 각자가 부담하게 했다. 지난 8월 서울남부지법 민사7단독 서영호 판사는 "등기관의 착오로 빚어진 일인 만큼, 재판 비용을 이씨 등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양측 모두 항소하지 않아 확정됐다.

윤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강남의 박종인 변호사는 "사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 판단을 한 사안으로 판결 이유에 바람직한 분쟁해결 방법을 따로 제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씨 입장에서도 이 사건 분쟁이 경정등기의 방법으로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정등기란
등기관의 착오로 인해 등기의 불일치가 생긴 경우 지방법원장의 허가를 얻어 이를 시정하는 등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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