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서초]불 타는 집에서 발견된 아빠, 집 밖의 아들

⑬집 안에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불길의 흔적은 다른 말을 했다

박보희 기자 2016.12.23 05:05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불은 집을 다 불태우고 나서야 사그라들었다. 나무와 흙으로 지어진 주택은 지붕과 기둥까지 불에 타 주저앉았다. 그 검은 잔해 밑에서 박씨가 숨진채 발견됐다. 그의 아들은 술에 취해 집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낸 혐의로 잡힌 아들은 자살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싸우고 현실을 비관해 자살을 하려고 자신의 방 침대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는데, 막상 불이 붙자 무서워서 밖으로 뛰쳐 나왔다고 했다. 

술에 취한 채 경찰에 잡혀온 아들은 말을 바꿨다. 불을 내고 밖으로 나와 방 안에 있는 아버지를 불렀지만, 잠에 든 아버지는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날 현장에 있던 사람은 숨진 박씨와 그의 아들 뿐. 주번에는 감시카메라도 없었고, 집 안에서 일어난 일을 목격한 자도 없었다. 피해자인 박씨는 이미 숨졌고, 목격자이자 용의자인 아들만 남아있을 뿐. 아들의 말은 어디서부터 거짓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 걸까. 

◇유독 심하게 탄 아버지의 몸…상처 하나 없는 아들의 몸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화재수사팀 조사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남은 것이라곤 불에 타고 남은 잔해 뿐이었다. 하지만 잔해 속에 남은 화재의 흔적은 그날 밤 일을 말해주고 있었다. 

현장은 아들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박씨가 누워있던 자리는 유독 검었다. 주변 모든 것이 타 숯덩이가 돼 있었다. 박씨가 발견된 자리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있지 않은 곳의 장판은 노랗게 타다 남은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박씨가 누워있던 곳은 장판부터 쇼파까지 새까맣게 타들어가 있었다. 

박씨 주변으로 얼룩이지듯 검게 타들어간 곳과 그나마 덜 탄 곳이 있었던 것. 더 심하게 탄 곳은 휘발유가 뿌려져 있던 자리라는 뜻이다. 아들의 말처럼 아들의 방에서도 같은 흔적이 나타났다. 조사관은 박씨가 있던 곳과 아들의 방에 휘발유가 뿌려져있었다고 추정했다. 

상처 하나 없는 아들의 몸도, 아들 자신의 진술과는 다른 말을 했다. 아들은 집 안에서 불을 붙이고 놀라서 도망쳐나왔다고 했지만, 아들의 몸에서는 어떤 화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휘발유는 인화점이 낮다. 즉 상온에서 쉽게 기체로 변하고, 기체로 변한 휘발유는 작은 불씨에도 폭발하듯 불이 붙는다. 아들이 방 안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면 기체로 변해 공기 중을 떠다니던 휘발유에 폭발하듯 불이 붙었을 것이고, 아들은 화상을 입었어야 했다. 

조사관은 "숨진 박씨가 누워있던 자리가 유독 심하게 탄 것으로 보건데 박씨 주변에 휘발유가 뿌려져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아들에게 화상 상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 불은 집 밖에 있던 아들이 낸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을 냈다. 

◇음주운전 말리는 아버지와 다툰 후 홧김에…

수사 결과 드러난 사실은 이랬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박씨는 아들이 술에 취한 채 운전을 해 시내로 가겠다고 하자 이를 말렸다. 박씨의 잔소리에 아들이 대들자 박씨는 아들을 때렸다. 다툼 끝에 화가 난 아들은 창고로 가서 휘발유와 도끼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도끼로 박씨의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고, 그 주변에 휘발유를 뿌렸다. 

아들은 집 밖으로 나왔다. 휘발유가 담긴 페트병 입구에 휴지를 끼우고 불을 붙여 집으로 던졌다. 휘발유가 뿌려진 낡은 목조 기와집에는 쉽게 불이 붙었다. 하지만 정신을 잃은 박씨는 미쳐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이같은 사실을 인정해 박씨의 아들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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