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일반

[친절한판례氏] 종교 이유로 수혈 거부하다 숨진 환자…의사 책임?

법원 "환자 자기결정권 존중해야…의사 양심따라 행동했다면 처벌 못해"

한정수 기자 2017.09.08 05:05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종교적 신념에 따라 수혈을 거부하던 환자가 수술을 받던 중 숨졌다면 의사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대법원은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A씨(당시 62세·여)는 2007년 인공고관절 수술을 받으려 했다. 그는 수혈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교리에 따라 미리 병원 3곳과 접촉해 수혈을 받지 않고 수술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으나 거절당했다.

A씨의 요청을 들어준 것은 의사 이모씨(60) 뿐이었다. 이씨는 수술 전 이뤄진 A씨에 대한 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었던 점, 혈액내과 전문의 등도 수술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점 등을 고려해 수술이 가능하다고 결론내렸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직접 "담당 의료진이 수혈이 필요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수혈을 원치 않는다는 본인 의지는 확고하며 설사 환자가 무의식이 되더라도 이 방침은 변하지 않는다. 이 방침으로 인해 야기되는 모든 피해에 대해 본인은 담당 의료진에게 민·형사상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A씨에 대한 수술은 순탄치 않았다. 수술 과정에서 A씨의 혈관이 파열됐고 출혈이 시작됐다. 이에 의료진은 수술실 밖으로 나가 가족들에게 A씨 상태를 설명한 후 수혈을 할 것인지 여부를 물었다. 그러나 가족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이에 이씨는 수술을 중단하고 A씨를 중환자실로 옮겼고, 그는 결국 과다 출혈로 인해 숨졌다.

검찰은 이씨가 업무상 과실로 수혈을 하지 않고도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잘못이 있다고 보고 그를 재판에 넘겼다. 고관절 수술의 특성상 다량의 출혈이 예상되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수술을 강행해 A씨를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 2심과 대법원은 모두 이씨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한 가장 본질적인 권리"라며 "특정한 치료방법을 거부하는 것이 자살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침해될 제3자의 이익이 없다면 이 같은 환자 의사는 존중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가 수혈 거부를 주장하게 된 배경과 경위 및 목적, 이 생각이 확고한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것인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판단했을 때 의사가 직업적 양심에 따라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생명이라는 가치 중 어느 한 쪽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행위했다면 이를 처벌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2009도14407)

◇관련 조항

형법

제267조(과실치사)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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