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일반

[친절한 판례氏] 주인 몰래 도장 꺼내쓰면 절도죄?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7.09.14 05:05
그래픽 = 이지혜 디자이너

상대방의 승낙 없이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피해자의 도장을 몰래 꺼내 사용한 뒤 곧바로 제자리에 갖다 놓은 경우 절도죄가 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A씨는 피해자인 B씨의 승낙 없이 B씨의 도장을 그의 집 안방 화장대 서랍에서 몰래 꺼냈습니다. 혼인신고서를 B씨 몰래 작성하기 위해서였죠.

A씨는 도장을 사용한 후 곧바로 제자리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A씨는 이 행위로 인해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대법원에서는 이런 A씨의 행위를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대법원은 A씨에게 절도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000도493 판결) 불법영득의사가 없었다는 게 이유였죠.

절도죄란 다른 사람의 재물을 훔치는 범죄입니다. 그 물건을 갖고 있는 사람의 의사에 반해 그것을 자기 것으로 가지고 가는 건데요. 절도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불법영득의사란 것이 필요합니다.

불법영득의사란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권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재물을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를 이용 또는 처분할 의사를 말합니다. 따라서 이런 생각 없이 그냥 다른 사람의 재물을 움직이거나 가지고 간 경우에는 절도죄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죠.

대법원 재판부는 “타인의 재물을 점유자의 승낙 없이 무단 사용하는 경우 그 사용으로 인해 재물 자체가 가지는 경제적 가치가 상당한 정도로 소모되거나 또는 사용 후 그 재물을 본래의 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 버리거나 곧 반환하지 않고 장시간 점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때에는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 사용으로 인한 가치의 소모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경미하고 또 사용 후 곧 반환한 것과 같은 때에는 그 소유권 또는 본권을 침해할 의사가 있다고 할 수 없어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건을 가져간 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불법영득의사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데요. 이 사건에서 A씨는 피해자인 B씨의 도장 자체를 훔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잠시 사용하고 갖다두려고 했죠. 그렇다면 절도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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